"비나는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지만, 비나가 어떻게 왕궁에서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비나는 말을 덧붙이며 앞으로 자신은 글래스고 패거리의 시즈일 뿐이라고 말했다."
작전 후
나는 성왕궁 서쪽 회당 안에 있는 알현실이 너무 싫다. 너무 휑해서 기분 나쁘다.
그곳엔 오직 왕좌만 우두커니 놓여 있을 뿐. 만약 비나가 거기 앉는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혼자, 그 차가운 의자에 앉아 텅 빈 계단을 바라보는……
장담컨대 비나 성격에는 1분도 못 버틸 것이다.
성왕궁 서쪽 회당 알현실
1098년 12월 23일 3:26 P.M.
비나 │왕관을 찾았다고? 어디 있지?
혼 │찾았다기보다는 누군가 의장실로 가져다 두었습니다. 없어진 시간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연설이 시작된 뒤로 보고 있습니다.
모건 │……비나 네가 저기 빈 왕좌에 왕관을 놓아뒀었잖아. 근데 왕관을 훔쳐봤자 아무 이득도 없을 텐데? 공작들이 지시했나?
비나 │아니, 그렇지 않아.
비나 │공작들은 지금까지 뭉쳐본 적도 없고, 다들 각자의 계산을 하고 있어. 다만 왕관 분실과 공작들의 런디니움 방문이 동시에 일어난 게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해.
모건 │하지만 네 말대로, 그건 그냥 오래된 낡아빠진 왕관이잖아?
혼 │……아니에요, 모건 씨. 그렇지 않습니다.
혼 │지금의 처지가 어떻든, 왕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빅토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혼 │아무도 쓰지 않고 방치된 지 20여 년. 대중들은 왕관의 존재를 잊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대하고 있습니다……
혼 │……왕관을 쓸 다음 명군을, 새로운 국왕이 빅토리아를 뒤덮은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 주기를 말이죠.
비나 │아니.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 마음속에 있는 왕권을 향한 갈망과 숭배를 채워줄 수 있으면서도,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적이 시급하게 필요했을 뿐이다.
혼 │부정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 사람들의 목소리는 당신에게 낯선 것도 아닙니다, 비나 씨.
혼 │당신의 신분이 아주 특이한 것은 확실합니다. 왕실의 후예이면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전쟁 영웅이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길거리에서 자랐으니,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혼 │거기에 의회도 순조롭게 설립한 데다가 공작들도 자발적으로 권리를 내려놨으니, 당신이 이미 모든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다들 더 믿게 된 겁니다.
혼 │그럼 남은 일도 자연스럽게 흘러……
모건 │그렇지만 대공작들의 진짜 생각은 전혀 그런 게 아니라고!
혼 │하지만 대중은 결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모건 씨.
비나 │그래…… 그건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가끔씩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이 특기지.
ˇ
뉴 오슈테리그 구 대로
1098년 12월 23일 4:59 P.M.
여유로운 시민 │엘리시오 씨, 에너지 바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매번 이렇게 맛있는 사례를 받을 수 있다면야 매일 기꺼이 샘플 채취 검사를 받을 거예요. 하하.
여유로운 시민 │컬럼비아에서는 이런 것도 전부 상품으로 만드나요? 컬럼비아인은 왜 평소에 이런 걸 비축해 두는 건지. 역시 재앙 대비인가요?
엘리시오 │아뇨, 그냥 제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엘리시오 │저는 종종 식사라고 하는 것이 그저 에너지와 영양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에너지 바가 그 과정을 더 빨리 끝내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엘리시오 │음, 다이앤 씨는 항상 이런 사고방식을 비판하지만요.
여유로운 시민 │그것도 그렇네요. 지금 런디니움은 기본적인 식량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까요.
여유로운 시민 │이건 알렉산드리나 전하가 크게 노력하신 결과예요.
초조한 시민 │이 사람한테 무슨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
초조한 시민 │엘리시오 시, 이…… 그 '에너지 바'를 가져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시는 게 좋겠어요.
여유로운 시민 │스탠리, 너 설마 엘리시오 씨가 의회에 고자질할 거라고……
초조한 시민 │아니야!
초조한 시민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주제로 너랑 싸울 수는 없잖아?
엘리시오 │음?
여유로운 시민 │하아. 얘는 별 이유도 없이 제가 알렉산드리나 '전하'라고 부르는 걸 싫어한단 말이죠. 그것뿐이에요.
여유로운 시민 │저와 스탠리는 정치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달라요. 저는 지금 국왕이 있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 친구는 국왕이 있던 시절에는 우리가 더 살기 힘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죠.
초조한 시민 │……
여유로운 시민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은 변한 것이 없거든요.
엘리시오 │……그러니까, 국왕이 있든 없든 당신들 삶에는 영향이 없다는 건가요?
초조한 시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 왕좌에 누가 앉더라도 국왕의 대관식 연회에 우리가 참석할 일은 없다는 게 현실이야.
여유로운 시민 │하아, 스탠리. 너는 언제쯤이면 조금 납득할만한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여유로운 시민 │엘리시오 씨, 죄송해요, 또 시간 쪼개서 이 고집불통을 깨우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여유로운 시민 │맞다, 도시 방위군의 활동이 잦아진 이유에 대해서 소문을 좀 들은 게 있어요. 누군가가 왕관을 훔쳐서 지금 순찰대가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있다는군요.
여유로운 시민 │가자, 스탠리. 안녕히 가세요, 엘리시오 씨.
엘리시오 │……그런데 다이앤 씨한테는 국왕이나 왕관에 관한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돌아가서 물어볼까.
ˇ
요양원 환자 │엘리시오 씨, 좀 쉬시는 게 좋겠어요. 계속 밖에서 사례 수집을 도와주신다면서요.
엘리시오 │도시의 감염자들 사례를 보면 거의 같은 시기에 급성으로 감염됐고, 대다수가 상당히 희귀한 병리학적 경과를 보이고 있어요. 이런 귀중한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기록해야 합니다.
엘리시오 │앞으로의 광석병 연구를 위해서도 그렇고, 런디니움 시민들을 위한 전용 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도 이 데이터들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시오 │아 맞다, 사라 씨. 다이앤 씨는 왜 오늘 병문안을 안 왔나요?
요양원 환자 │다이앤 씨요?
요양원 환자 │엘리시오 씨를 도와주고 있는 줄 알았어요. 오늘은 전우들이 여럿 요양원에 와서 최근에 뭐 이상한 점은 없었냐고 물어보러 왔길래, 옛 친구로서 다이앤 씨도 같이 모이고 싶었는데 말이죠.
엘리시오 │……?
전쟁은 끝났지만, 비나는 그 왕관을 어디서 찾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두 번 다시 그 철 덩어리를 볼 일도 없을 것이다.
왕관은 성왕궁 서쪽 회당 알현실에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 완전히 녹슬어 문드러질 때까지.
"국왕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비나가 술에 취해 내 목을 끌어안고 했던 말이다.
그런데 고작 두 달 남짓이 지났을 뿐인데, 왕관은 다시 이렇게 당당하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 오랜 제국의 망령은 포기하지도 않고 다음 희생자에게 들러붙으려 한다.
의장실
1098년 12월 24일 6:26 A.M.
비나 │이 일을 누가 또 알고 있지?
델핀 │이미 정보를 차단하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모건 │……그럼 이건 어쩔 생각인데?
모건이 책상 위 왕관을 가리켰다. 왕관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모건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야. 이게 그……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는 그거야?
모건 │비나…… 비나?
비나는 왕관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책상에 기대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눈앞의 인물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왕관을 훔친 자'를.
다이앤 │……
다이앤 │정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실 생각이신가요, 의장님?
비나 │예상은 간다. 너희들 대부분은 내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품고 있어.
비나 │그리고 이 건에 관해서는 내 동료들이 당장이라도 더 완벽하고 객관적인 보고를 올려 주겠지. 그러니……
다이앤 │저를 그런 자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왕좌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것은 왕좌에 앉을 사람입니다.
비나 │……
다이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나 의장님. 의회가 공표한 새 법률도 전부 숙지하고 있습니다. 허가 없이 알현실에 들어간 것은 분명 중죄이고,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비나는 고개를 저었다.
비나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런 환상을 품은 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아. 임시 법정에서 법률에 기반해 네 죄를 심판하겠다.
비나 │이의 있나?
다이앤 │없습니다, 의장님.
비나 │델핀, 남은 골칫거리는 네게 맡기겠어. 왕관은 내가 직접 알현실에 가져다 두지. 그리고 이후 관리 체계도 강화하겠다.
비나 │하아, 그다음은 의회로 가서 의원들에게 보고할 원고를 준비해야겠군……
다이앤 │훗…… 보고입니까.
다이앤 │그런 건 애당초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즈. 의회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일부 사람들이 자기들 이익의 균형을 맞춰보기 위한 자리일 뿐입니다.
다이앤 │의원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하시지 않습니까?
비나 │……
다이앤 │지금 런디니움에 가장 필요한 건 의회의 감시를 받는 의장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변혁을 이끌 수 있는 절대적인 리더입니다.
델핀 │비나 씨,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할 필요는 없어.
비나 │알고 있다, 델핀. 다이앤 너는 런디니움에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다이앤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국왕입니다. 빅토리아의 국왕.
다이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짐자깅 갑니다. 당신은 여태까지 제가 봐온 권력자들과는 다릅니다.
다이앤 │당신은 자신의 혈통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을 실현하기에 '의장'이란 직위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이 왕관은 당신한테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다이앤이 일어서서 비나를 향해 똑바로 경례했다.
다이앤 │여기까지가 제가 말하고 싶었던 전부입니다.
다이앤 │파라곤 부대, 시즈, 우리의 고향을 위해 바친 당신들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다이앤 │저는 빅토리아의 변화를 사랑하고, 빅토리아의 미래가 전에 없을 정도로 밝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다이앤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변화 속도가 더디기에…… 아마 저는 그날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요.
다이앤 │델핀 님, 가시죠. 이제 저는 어디로 가면 되는지?
비나 │……
"너는……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가?"
"당신은 빅토리아를 바꾸려고……"
"아니, 당신은 빅토리아를, 과거의 그 빅토리아를 부수려고 합니다."

비나 │……
비나가 계단 아래에 서서 왕관을 받쳐 들고 왕좌를 바라보았다.
왕좌 옆에는 황금 사자가 엎드려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비나 │선생님, 확실하게 가르쳐 주면 좋잖아.
비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 왕좌 앞으로 와서는, 계단 위에 걸터앉았다.
선생님은 눈을 뜨지 않고 있는 듯했다. 콧김이 갈기를 살짝 흔들어, 먼지가 일어났다.
그것은 불만의 표시였다.
비나 │미안해, 선생님. 또 한숨도 못 잤어. 아직 처리 못 한 까다로운 일들이 많이 남아서……
비나의 등에 온기가 느껴졌다. 황금 사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거대한 몸으로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어릴 때처럼. 비나는 햇살 냄새를 맡았다.
비나 │선생님, 이렇게 선생님 곁에 기대서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나 │도시 밖에서 여기로 돌아온 것이 마치 꿈같아……
비나 │나는 이미 오랫동안 푹 잠들지도, 마음껏 꿈을 꾸지도 못했는데.
사자가 살짝 고개를 들어 비나의 금빛 머리카락에 머리를 비볐다. 조금 간지러웠다.
한기를 느낀 비나의 몸이 살짝 떨리면서, 다시 의식이 돌아왔다.
비나 │……여기는…… 계속 이렇게 추웠던가? 아직 쉴 때가 아니야.
비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적어. 약도 식량도 충분히 배급되고 있지 않아.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언쟁……
비나 │가끔은 이 옷을 다 벗어던지고, 그 멍청이들을 한 명씩 때려눕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일이 훨씬 더 쉬워질지도 모르지. 안 그래?
비나 │"과거의 빅토리아를 부순다"……
비나 │이게 진짜 복싱 경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황금 사자는 눈을 감고 잠들었다. 하지만 꼬리로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비나의 팔을 토닥였다.
비나 │……
비나 │선생님, 미안해. 또 푸념이나 늘어놓고.
비나 │가끔은 모건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괜찮나 싶은 것도 있어. 그 녀석들은 이해하지도 못할 거고,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아.
비나 │델핀…… 델핀 앞에서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이미 나를 대신해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고, 내게 큰 기대도 하고 있어.
비나 │……이미 많은 사람이 나를 의지하고 있어, 선생님.
비나 │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비나는 눈을 감고 왕관을 꼭 쥐었다.
국왕도 의장도, 그녀에게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비나는 그저……
모건 │비나, 역시 여기 있었네! 너…… 아까 잠들었어?
비나 │아니, 그냥 생각 중이었다. 선생님이……
비나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온기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었다.
사자는 가버렸다.
비나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웠어, 선생님.)
비나 │모건, 여기는 왜 왔어?
모건 │왕관을 훔친 그 사람 말인데, 델핀이 임시 법정을 설득해서 일단 도시 방위군 주둔지의 독방에 가둬 두기로 했어.
모건 │보고서를 완성했는데,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온 거야. 자, 여기.
모건 │그 사람의 이름은 다이앤 웨버.
모건이 말을 멈추고 비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비나는 그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모건이 말을 이어가는 것을 기다렸다.
모건 │……
모건 │그 사람이 왕관을 훔친 건 우발적인 충동 때문이 아냐.
모건 │다이앤은 꽤 오랫동안 컬럼비아에서 온 제약회사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도시 내 많은 사람에게 광석병 감염 후의 자기방어 지식을 알리는 일을 도와줬어.
모건 │그래서 성왕궁 서쪽 회당 밖에 있는 순찰대의 교대 시간을 파악하고 있었고, 네가 방송으로 연설을 하는 사이에 알현실로 숨어든 거야.
모건 │그리고 꽤 오랫동안, 못해도 30분은 머물렀어.
비나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모건 │글쎄, 말을 하려고 안 하네. 고민했을지도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있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결국에는 왕관을 가지고 나갔어.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비나 │잠깐, 이상한데. 알현실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도, 도망칠 때는 교대한 순찰대와 마주치지 않았나?
모건 │그게 진짜로 그랬다더라고? 본인도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어서 놀랐대. 무조건 순찰대한테 잡힐 거라고 생각했었나 봐.
비나 │……즉 누군가가 도와줬다는 얘기가 되는군. 그 손님들인가?
모건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당사자는 확실하게 몰라. 그리고 완전히 자발적으로 이 행동을 했어.
비나 │하지만…… 왜지? 그저 왕관을 눈앞에 가져와서 날 부추기기만……
모건 │그 사람 이름은 다이앤 웨버라니까~
비나 │그건 나도 알……
모건 │기억 못 하는구나. 계속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생각났어. 역시 그 사람이었구나 하고.
비나 │……?
모건 │우리가 집 앞에서 연합군한테 포위당했던 날, 제일 먼저 명령을 어기고 우리를 호위했던 군인, 기억 안 나?
비나는 그날의 하늘을, 하늘을 뒤덮은 증기를, 가시지 않는 포연 냄새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이제는 얼굴이 가물가물해진 병사도.
"연합군 제6종대 재10보병단 다이앤 웨버 중위가 명령한다. 전원 무기를 내리고 파라곤 부대를 호위하라!"
"저는 군인이기 전에, 여기서 태어난 런디니움인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제 집이기도 하죠."
"시즈, 조금만 더 버텨주시죠. 아직 함께 넘어서야 할 싸움이 남았어요."
"우리의 것을 되찾기 위해!"
모건 │다이앤 웨버, 캐스터 공작의 명령을 어긴 병사…… 나흐체러르 킹과의 마지막 전투 중에 결국 급성 감염을 피하지 못했어.
모건 │기억나? 너한테 '왕의 숨결'을 받아 '나흐체러르'를 향해 돌진한 그 병사라고.
비나 │……!
모건 │그 사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모건 │도시에 광석병 억제제가 부족해서, 병증 악화를 늦출 만큼 충분한 약을 받지 못했거든. 검사도 해 봤지만……
점점 더 꽉 쥐어지는 비나의 손으로 인해, 왕관에서는 희미한 쇳소리가 났다. 왕관은 약해 보였지만 아주 튼튼했다.
모건 │그 사람은 분명 우리의 집을, 빅토리아를 사랑하고 있어.
모건 │그러니까 자진해서 공작 부대에 들어갔고, 또 자진해서 공작의 명령을 어겨 퇴역할 수밖에 없었지.
모건 │다이앤은 널 아주 신뢰하고 있어.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비나, 저기……
끝내 다이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비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고, 나도 비나가 어떻게 답할지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비나 빅토리아 의장이 어떻게 답할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이앤 웨버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터무니없는 결단을 내렸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한다.
……왕관을 훔친, 하지만 진정으로 빅토리아를 사랑하는 사람.
나는 모르겠다. 도시로 돌아온 뒤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바로 그날,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성왕궁 서쪽 회당 앞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 이후, 지금까지 너무 오래 여기 머물렀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나의 복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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