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 있는 도구들은 살카즈가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비나의 해머를 빌려 벽을 부수고 비밀 통로를 만들려고 했다. 의외였지만 비나도 허락했다……"
작전 전
뉴 오슈테리그 구 소형 차량 공장
1098년 12월 21일 6:13 P.M.
열정적인 노동자 │드디어 돌아왔군, 대장! 일단 이 설계도 좀 봐줘. 완전히 새로운 전력 분배 밸브를 설계하는 게 쓸데없는지 아닌지 오크랑 논쟁 중이야.
열정적인 노동자 │그런데 우리 예상으로는,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은 대형 차량이 우리 공장에서 런디니움 각지로 운반될 거란 말이지?
열정적인 노동자 │내가 보기에는 일찌감치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열정적인 노동자 │안 그러면 그 상황이 됐을 때 직원들이 차량 적재량이나 견인력이 완전히 부족한 걸 보고 늙어 빠진 우리들한테 보수적이라고 불평할 거라고.
열정적인 노동자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무도 미래를 예상할 줄 모르는 놈들이라니까!" 하면서. 그런 말을 듣는 건 사양이야!

피스트 │대장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우리 사이가 좋긴 해도 이제 다들 자경단이 아니잖아. 그리고 다들 각자 자기 공장으로 돌아갔잖아.
피스트 │그리고 오크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은 절약할 생각이겠지.
열정적인 노동자 │……당연히 알기는 하지만, 다음 세대에 문제를 남기면 안 되잖아.

락락 │마틴 아저씨, 아저씨 마음은 나도 알아.
락락 │그래도 천천히 할 수밖에 없어. 클로저 씨가 본인이 발명한 드론 기술을 많이 가르쳐 줘서, 나도 새로 개발한 사륜구동 차량에 전부 탑재해보고 싶거든.
락락 │하지만 전력 공급 문제나 자동화 수단이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이미 머리가 아파. 설계도는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우선은 지금 상황을 보고 조금씩 해야겠지.
피스트 │마틴 아저씨, 우선 오크가 얘기한 방법으로 기본 모델을 만든 다음에 중요한 과제들을 해결하자고.
피스트 │아저씨 설계는 지금까지 했던 대로 '런디니움 산업 진흥 협회'에 제출하자. 그러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피스트 │어차피 의회의 지지도 있잖아. 산업 진흥 협회는 애초에 전후 복구와 빅토리아 기술의 국제적 선도 지위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모든 새로운 아이디어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해.
열정적인 노동자 │너는 협회의 고문이니까 결정은 네가 해.
피스트 │으음, 요즘 다들 아이디어를 너무 많이 내서…… 심사가 못 따라갈 것 같아.
락락 │다들 자기 집이 자기 아이디어로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으니까. 그래서 의욕이 나는 거야.
피스트 │그렇지. 공장 생산 라인, 모든 도로를 연결하는 고속 궤도 시스템, 그리고 런디니움 전체를 지키는 성벽과 수성포.
피스트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손으로, 상상한 대로 만들 수 있어.
열정적인 노동자 │다른 건 몰라도, 피스트 네가 상상한 형태로는 만들지 말라고. 도로가 유원지로 개조돼서 다들 집라인을 타고 다녀야 할까 봐 조마조마하군.
피스트 │저기, 그건 그냥 기각된 제안 중에서 다들 좀 웃겨 보자고 생각한 거라니까. 내 아이디어가 전부 다 그렇지는 않아.
피스트 │그나저나 당신들은 정말로 오크를 주요 작업장에 남겨 둘 거야? 그 녀석 옛날에 있던 공장에서 당신들이랑 뜻이 별로 안 맞았다고 들었는데.
피스트 │어느 공장이든 자기들의 기술에 관해서는 기밀이 있을 테고, 주문 따내려고 서로를 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겠지……
열정적인 노동자 │하하, 그렇지. 우리 공장도 직원이 전부 자경단에 들어갔던 것도 아니니까.
열정적인 노동자 │하지만 캐서린이 다른 공장도 협회에 가입시켜서 서로 기술을 공유하도록 설득한 이상, 우리도 숨길 필요는 없지.
초조한 노동자 │누가 좀! 도와줘!
초조한 노동자 │매튜 씨가 얻어맞았어!
ˇ
비나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
슬퍼하는 사람 │아뇨, 만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의장님.
슬퍼하는 사람 │저는 매튜라고 합니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상인이지요. 하지만 작금의 현실에 대해 의장님께 불만을 말해야겠습니다.
비나 │의회에 편지를 보내거나 산업 진흥 협회에 직접 도움을 청해라. 나는 지금……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슬퍼하는 사람 │의장님, 저와 함께 폐쇄된 십여 개의 공장이 공동으로 의회에 보낸 편지는 아마 방치된 지 보름은 지났을 겁니다.
비나 │일부 공장의 폐쇄는 의회에서 이미 가결된 일이다. 런디니움 물류 항구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나보다 너희가 더 잘 알 텐데?
슬퍼하는 사람 │하지만 공장 하나가 부도나면 수디언 구와 하이버리 구의 수백 가구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 │저희는 그저 저희를 위해 조금이라도 좋으니 자금을 마련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설령 그게 비공식적인 방법이라 해도요.
슬퍼하는 사람 │폐쇄된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둠의 루트로 약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어요. 생산 라인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직원은 기계 열 대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 │우리 노동자들은 이 도시를 위해 아직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 │그런데 요양소에서는 귀중한 광석병 억제제가 대량으로 죽어 가는 부상병들에게 분배되고 있습니다.
비나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슬퍼하는 사람 │의장님 대신 '경제적 합리성'을 계산해 드리죠……
비나 │*빅토리아 비속어*!
비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주먹은 이미 상대방의 코를 때리고 있었다.
매튜라는 이름의 남자는 한 손으로 피가 나는 코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수건을 찾기 위해 당황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옷을 빨갛게 물들였다.
많은 사람이 주위를 둘러쌌고 모두가 비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에게 적의와 분노는 없다. 그저 각각의 시선이 비나를 깨닫게 할 뿐. 그녀의 무력함, 그녀의 부적합함을.
비나 │나는……
슬퍼하는 사람 │의장님이 화내는 이유도 압니다. 알죠…… 하지만 누군가에겐 해야만 하는 말도 있는 겁니다.
슬퍼하는 사람 │저도 이런 말을 하는 게 마음 편하진 않습니다.
슬퍼하는 사람 │저도 한때는 자경단의 일원이었고, 도시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장님은 그 카우투스 소녀와 함께 찾아온 동료였죠. 그 후 당신들은 떠났고요.
슬퍼하는 사람 │파라곤 부대가 도시에 들어온 뒤에, 의장님이 그들의 리더라는 것을 캐서린 씨가 알려 줬습니다. 저는 아무 망설임 없이 증기를 피워 당신들을 환영하는 데 동의했죠.
슬퍼하는 사람 │하지만 국왕의 옷을 입고 거리에 서서 의회를 대표해 모두에게 멋진 생활을 약속하던 사람을 처음 봤을 때는, 그게 당신인 줄 몰랐습니다.
슬퍼하는 사람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은 일부 사람을 구할 때 다른 사람을 일부 희생하고 있죠. 아닙니까?
비나는 남자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했다.
그럴 생각으로 남자의 멱살을 잡고 가볍게 들어 올렸지만, 그 순간 남자의 눈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눈을 보았다.
"시즈는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주먹만 휘둘러서 예전처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비나가 얼마나 바라는가.
무언가 비나의 주머니에서 떨어지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오랫동안 막대 사탕을 먹지 않은 탓에, 비나는 이 금속 케이스가 계속 이 옷에 들어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슬퍼하는 사람 │공장을 폐쇄하고 오리지늄 연료를 넘기는 데 동의했을 땐 다들 당신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저 희생되는 것이 우리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슬퍼하는 사람 │주먹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요…… '시즈' 씨.
??? │……비나 씨!
피스트 │매튜 씨를 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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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실
1098년 12월 21일 7:32 P.M.
피스트 │……그리고 아까 매튜 씨의 의견은 다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발언이 아니야.
피스트 │아,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피스트 │내가 아는 건, 동료 몇 명이 나를 통해서 로도스 아일랜드와 관계를 쌓아서 요양소의 의료 설비 수준을 올려보려고 한다는 것 정도야.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설비를 만들어내는 건 못 해도, 하다못해 설비의 효율을 높일 수는 있으니까.
피스트 │……분명 공장 사람들 대부분은 현재의 의료 시스템 운영 방식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을 거야.
비나 │아니, 피스트 네가 변명할 필요는 없어. 충동적으로 행동한 건 나니까.
비나 │너희는 이미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 주고 있어.
비나 │점점 최적화되는 의료 설비, 고속 통행 터널 재가동, 통일 난방 시스템 실험……이 도시에서 단기간에 일어난 이런 변화가 이미 많은 사람을 구하고 있어.
피스트 │그것도 다 당신이 의회에서 귀찮은 일을 여럿 막아주고 승인해 준 덕분이지.
비나 │그건 원래 내 임무야. 캐서린 씨 상태는 어떻지?
피스트 │할머니?
피스트 │으, 할머니 성격이 그래놔서…… 내가 뭘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해. 기침하는 것도 남에게 안 들키려고 한단 말이지.
피스트 │그 외에는 예전과 변함없어. 이제 공장에서 일할 필요는 없지만, 여전히 바쁘게 지내서 별로 못 만나.
비나 │지난달에 캐서린 씨와도 이렇게 일대일로 얘기했어. 캐서린 씨는 이 의자에 앉았지. 의회에 가입하라고 제안했는데 거절당했어.
비나 │그리고 전쟁 중에 살카즈의 감시를 피했던 너희 비밀 작업장과 거기 보관되어 있던 그 무기 말인데……
피스트 │……지금의 런디니움에서는 쓸 데가 없어.
비나 │그렇지. 캐서린 씨와 이 일에 관해서는 이미 합의를 봤어.
비나 │너와 캐서린 씨가 대부분의 공장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너희끼리 그 무기를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비나 │의회는 감시를 받아야 해. 나 역시 그렇고.
피스트 │……
비나 │현재 의회에는 그렇게까지 고도화된 시스템은 없어. 다들 감으로 하고 있는 상태고, 이런 상황에서 의회의 힘을 빌려 뭔가를 저지르려는 자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
비나 │하지만 놈들도 늦든 빠르든 이해해야 해. 국왕을 중심으로 운영하던 옛 의회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피스트 │그건 국왕이 교수형…… 어……
비나 │아니…… 국왕이 교수형을 당했을 때도 의회는 변하지 않았어. 기껏해야 지배자가 국왕에서 공작 측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비나 │최근 들어서야 로열 사이언스 아카데미의 아카데미션 생존자들이 드디어 중단됐던 런디니움 도시 신문의 연구를 다시 정리해서 완성할 기회가 생겼는데……
비나 │그게 백만 자 이상이나 되는 바람에, 아카데미션들이 반평생에 걸쳐 정리하고 개정하면서 러니니움의 온갖 분야를 알아보고 있어.
비나 │내가 이런 관점에서 내 고향을 재인식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비나 │보고를 듣고 나서야 이 도시의 저항이 일찌감치 시작됐다는 것을 알았지……
비나 │"살카즈가 실질적으로 도시를 지배한 후, 아직 도시에서 생활하던 런디니움 사람들은 신분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단결해 도시 대부분의 기본적인 기능이 돌아가도록 유지했다."
비나 │아카데미션들은 보고한 내용 중에서 이걸 의회의 새로운 형태로 보고 있어.
피스트 │……듣고 있자니 조금…… 뭐랄까, 막무가내 아닌가? 이치에 맞긴 하지만.
비나 │아니, 내가 본 건 다른 부분이야, 피스트. 전쟁 중에는 살기 위해서 온갖 사심과 격차를 일시적이나마 잊을 수 있었어……
비나 │하지만 지금은 단언할 수 없지.
비나 │내가 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어. 누군가가 붙잡아 줘야 해. 내가……
피스트 │그게 우리였으면 좋겠다고?
비나 │그게 나와 캐서린 씨의 약속이야. 내 검은 너희들이 단조해서 넘겨준 거잖아?
비나 │이 전쟁은 많은 걸 파괴했어. 시대의 변화 속에서 런디니움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너희 도움이 필요해.
비나 │때로는 너희의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의회나 사이언스 아카데미 결재 담당자들의 골머리를 썩게 할 때도 있지만, 그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야.
피스트 │헤헤.
비나 │완전히 독자적인 도시 방어 시스템, 빅토리아 공작들이 오랫동안 등한시한 자동화 기술, 그리고 증기 기사의 시대가 끝난 후 새로운 억지력이 될 무기……
비나 │모든 면에서 너희의 협력이 필요해. 그리고 이건 어떤 특정 인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런디니움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비나 │피스트, 나는 너희의 신뢰를 얻을 자격이 없어. 지금의 의회도 마찬가지야…… 매튜 씨 병문안을 가면 나 대신 한 번 더 사죄해 줬으면 해.
비나 │나는 계속해서 공장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의회에 요구할 거야.
비나 │공작에게 구매한 약은 이미 운송되는 중이야. 운송 경로의 안정성 문제가 해결되면 상황은 금방 호전되겠지.
피스트 │훗, 공작의 운송함을 위협할 수 있는 놈은 없지 않겠어?
비나 │……계속해서 공작들이 도시에 보내둔 대표들과는 연락을 주고받을 예정이야.
피스트 │우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 언제든 여기 있을 테니까.
피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잠시 망설이면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스트 │할머니한테는 늘 쓸데없이 잡생각이 많다고 혼나고 있어.
피스트 │하지만 우리가 제출한 미래 창조 계획을 들고 산업 진흥 협회에서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
피스트 │그리고 얼마 후에 할머니는 건강 문제로 생산 라인에서 물러나셨지.
피스트 │……비나 씨, 우리는 모두 미래를 꿈꾸는 걸 좋아해. 우리는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집무실이 고요해졌다. 비나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한 뒤 라디오를 켰다.
방송 소리 │치직……
방송 소리 │……오늘 저녁,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의장이 악인을 처벌하는 광경을 많은 시민이 목격했습니다.
방송 소리 │한 남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장에게 뇌물을 바치려고 했으나, 의장게선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를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방송 소리 │갈수록 더 많은 시민이 빅토리아 의장이 인격적으로도 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
비나 │……
ˇ
런디니움 지하
1098년 12월 21일 8:01 P.M.
캐서린 │이제야 겨우 우리 사이에 작은 신뢰가 싹튼 것 같군.
캐서린 │당신들이 드디어 이 운송 루트를 혼자서도 호송할 수 있게 되었는지…… 아니면 당신 말대로 대부분 사람들이 빅토리아를 떠난 건지는 모르겠다만.
퍼시벌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작은 로봇을 데리고 있군요. 저를 별로 신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캐서린 │곳곳에 갈 곳을 잃은 난민들이 있어. 물자를 약탈당하지 않게 조심해야지.
캐서린 │물론 당신들도 위험 요소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해.
퍼시벌 │하지만 런디니움에는 리유니온의 옛 악명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요.
퍼시벌 │확인해 보시죠. 목록에 있는 물자는 전부 여기 있어요. 다음 약도 예정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캐서린 │당신들은 거의 다 여기를 떠났다고 하던데, 나인은……?
퍼시벌 │갔죠. 그렇다기보다는, 다시는 이 도시에서 집을 구하지 못할 많은 이들을 데리고 떠났어요.
퍼시벌 │물론 도시 외곽의 공장을 가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당신이 확보해 준 운송 루트도 계속 유용하게 쓰일 거예요.
캐서린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안 가도 되나? 지금 런디니움은 감염자에게 결코 좋은 장소라 할 수 없어.
퍼시벌 │"좋은 장소라 할 수 없다" 런디니움 사람다운 완곡한 표현이군요.
퍼시벌 │저는 어린 시절에 그림책 속 런디니움에 관심이 많았어요. 국왕과 공주가 사는 황궁 정원, 미궁처럼 탐험하기 딱 좋아 보이는 공장.
퍼시벌 │하지마나 나중에 가서 깨달았어요. 런디니움도 빅토리아의 다른 지역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어디든 정착하기엔 적합하지 않아요.
퍼시벌 │제가 떠나지 않은 건, 그냥 누군가는 남아야 했는데 마침 내가 안정적인 일을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 감염자를 대하는 런디니움의 태도는…… 나쁘지 않아요.
캐서린 │그런가?
퍼시벌 │제가 그 사람들을 따르는 건 그냥 목숨을 구해 줬기 때문이에요. 저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거나, 어떻게 죽는 게 좋은 건지 생각하진 않아요.
퍼시벌 │……그리고 그들은 결국 무가치하게 죽을 때가 많죠. 죽어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에요.
캐서린 │당신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어. 직원들을 대신해 감사를 전하지.
캐서린 │다음에 전단지 돌릴 땐, 겸사겸사 하이버리 구로 와. 당신 변장 정도는 알아볼 수 있으니까.
퍼시벌 │……
캐서린 │물자 확인은 끝났어. 문제없군. 그러면 난 이걸 가지고 이만 가 보도록 하지.
퍼시벌 │잠깐만요, 캐서린 씨……
캐서린 │왜?
퍼시벌 │……한밤중에 돌이 자라난 부분이 아플 때 조금이나마 통증을 덜어줄 방법을 알아요.
퍼시벌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만드는 약은…… 전문 제약 회사 약만큼 효과가 좋지는 않아요.
캐서린 │그렇겠지. 다른 사람들은 속여도 나는 못 속여. 지금 런디니움에 유통되는 억제제들이 대부분 그렇지.
캐서린 │뭐 이 나이쯤 되면 애당초 제정신을 유지하는 날이 많지도 않고, 고통스러운 날도 적지 않아.
캐서린 │하지만 하루라도 더 제정신으로 지내면서 할 일을 더 한다. 이걸로 충분해.
ˇ
빅토리아 부사관 │파견 보냈던 자들이 도시 외곽에 있는 리유니온의 거점과 주요 공장 두 곳, 그리고 운송 루트를 알아냈습니다.
빅토리아 부사관 │이 노선을 봉쇄할까요?
델핀 │……
델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정보대로라면 그자들은 런디니움 시민들의 생활에 위협이 되고 있지 않아요.
델핀 │비나 씨도 말했지만, 리유니온을 경계하는 건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라고 합니다.
델핀 │하지만 당시 런디니움 시민들이 공작에게 맞서도록 리유니온이 부추겼던 게, 표면적으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건 비나 씨도 인정했습니다.
델핀 │암거래는…… 확실하게 우리 통제하에만 둘 수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퍼시벌도 바보는 아니니까 뭘 건드리면 안 되는지는 알고 있겠죠.
델핀 │리유니온의 주요 멤버들이 런디니움에서 철수한 후로는 위협이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주시하고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델핀 │오히려 그들이 감염자 문제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면, 은밀하게 접촉하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빅토리아 부사관 │알겠습니다. 리유니온에 대해선 가벼운 감시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델핀 │이런 일은 당신들에겐 만족스럽지 못할 일일까요.
빅토리아 부사관 │그렇지 않습니다, 델핀 님!
델핀 │윈더미어 공작의 전함을 떠난 뒤로, 런디니움에 접근할 때는 첩보 활동을 중지하고 돌입에만 전념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만……
델핀 │……당신은 린카딘의 호수가 그립지 않나요?
작전 후
허풍 떠는 남자 │역시 이해가 안 됩니다, 하이디 씨. 겨우 이 위대한 도시로 돌아왔는데 또 떠나려고 하시다니……
허풍 떠는 남자 │뭐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시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이디 │토룬으로요? ……음, 더 멀리 가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 인생의 길잡이는 아버지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하이디 │물론 당신의 조언은 늘 깨달음을 줘요. 예를 들면 예전에 얘기하셨던, 마치 백작의 사절과 만찬을 한 경험에서도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었죠.
허풍 떠는 남자 │하핫, 당신처럼 정치와는 담쌓은 소설가가 역사적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신다는데, 기꺼이 자료를 제공해 드려야지요.
하이디 │그리고 제 고향이자 제가 제일 잘 아는 토룬에 관해서도, 이 무시무시한 런디니움의 전쟁과 함께 이야기로 남겨야 한다고 아까 말씀하셨죠.
허풍 떠는 남자 │그렇습니다. 그 볼품없던 세월을 그대로 기억해 내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도시를 위해 했던 영웅적인 행적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해요.
하이디 │영웅…… 말씀하신 대로 우린 모두 영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이디 │아, 이런 사랑 얘기도 매력적이겠어요. 빅토리아 변방에 살던 한 소녀가 휴가차 그곳을 찾은 청년과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청년은 런디니움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요.
하이디 │물론 소녀는 결국 그 소식이 거짓이었단 걸 알게 되고, 사랑하는 이는 영웅이 되어 곁으로 돌아오는 거죠.
허풍 떠는 남자 │훌륭한 아이디어네요, 하이디 씨. 잃은 줄 알았던 연인이 돌아온다…… 마치 외부인에게 짓밟혔다가 우리가 다시 찾아온 이 도시 같군요.
허풍 떠는 남자 │……연주가 시작됐군요. 들어보세요. 연회장엔 레드 와인도 디저트도 없고, 조명도 예전만큼 밝진 못합니다. 하지만 금관악기에서 흐르는 선율만큼은 여전히 갈라지지 않고 청아하군요.
하이디 │무도회장으로 가시죠. 제게 주신 영감과 저는 이 창가에 남겨 두셔도 괜찮아요.
허풍 떠는 남자 │그럼 여기 계신 친구 두 분은……
엘리시오 │어……
하이디 │이 사절분은 다른 나라에서 오셔서 빅토리아의 예법이 아직 익숙하지 않으실 거예요.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겠어요?
허풍 떠는 남자 │하하하, 물론입니다.
ˇ
하이디 │……
엘리시오 │……하이디 씨, 맞죠?
하이디 │……아, 제가 안내할 테니 주변을 둘러보실래요?
엘리시오 │아니요, 더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전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이디 │사실 여기는 어떤 손님도 거부하지 않아요. 혹시 두 분께서 더 관심이 있다면 다음엔 창문이 아니라 객실 문을 통해 들어오셔도 됩니다.
엘리시오 │호의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귀족들 파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엘리시오 │제가 가장 먼저 조사한 게 빅토리아의 귀족 정치입니다. 당신들의 예법이나 감염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추가로 댄스 스텝까지 배웠죠……
하이디 │윽, 저 같은 삼류 소설가를 귀족이라 부를 수 있을지…… 그런데 이 병사분이 왜 당신을 여기로 데려왔는지는 물어보셨나요?
엘리시오 │……아뇨. 이 분이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제가 멋대로 결정한 겁니다!
다이앤 │하아. 하이디 님,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런디니움에 남아서 감염자 문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싶다길래, 여기저기 안내할 생각에…… 아주 가끔은 적절하지 못한 방법을 쓸 때도 있지만요.
다이앤 │비웃고 싶으시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보시다시피 거짓말도 안 하고 속마음을 숨기지도 않는 사람이니까요.
하이디 │후훗, 실로 '적심'…… 신분답네요.
하이디 │엘리시오 씨. 당신은 적심 의료의 대표, 맞죠?
엘리시오 │우리 기관이 그 정도로 유명하진 않을 텐데요……
하이디 │감염자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어요.
하이디 │하지만 귀족들이 은밀하게 주고받는 거짓을 가려내는 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이디 │예를 들면, 지금 팔짱을 끼고 무도회장에 들어온 사람은 대부분 감염자죠.
엘리시오 │……
엘리시오 │이론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일이에요. 살카즈가 뿌린 오리지늄 분진은 신분 관계없이 모든 런디니움 시민에게 해를 입혔으니까요. 하지만……
하이디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아요. 자기 옆에 서 있는 사람이 감염자인지 아닌지 캐내려는 사람도 없어요. 이건 그들 자신을 위해 남겨둔 체면이자…… 일종의 꿈이기도 하죠.
엘리시오 │……
엘리시오가 홀을 바라보았다. 기둥의 금장식에 남은 벗겨지고 패인 자국은 전쟁 중 폭도들이 이곳을 침범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연주가들의 진심을 담은 연주가 눈앞에 보이는 이 을씨년스러움을 대부분 가려주었다.
스스로를 소설가라 말하는 여성이 펜 뚜껑을 열고 무언가를 노트에 써 내려갔다.
하이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때에, 이런 무도회 같은 건 무의미한 자기 암시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아요.
엘리시오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엘리시오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니까요.
엘리시오 │……이건?
하이디 │방금 생각나는 대로 써 봤어요. 읽을 가치조차 없는 줄거리…… 그리고 약간의 추가 정보입니다. 받아 주세요.
하이디 │이런 예감이 드네요, 엘리시오 씨. 우린 또 만날 거예요.
엘리시오 │……고맙습니다.
엘리시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하이디 씨에겐 눈앞의 환상으론 치유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이디 │……가끔 어떤 친구가 그리워질 뿐이에요.
하이디 │그 친구가 사라진 후,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줄어버렸죠.
ˇ

비나 │"만국 정상회담"……?
오렌 │라테라노는 빅토리아에서 일어난 일에 상당히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찌 됐던 이건 살카즈가 일으킨 재난이니까요.
오렌 │하지만 살카즈 문제를 강단 있게 처리하는 당신과 의회가 이 도시를 재건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렌 │물론 교황님께서도 사람들을 도탄에 빠뜨릴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테라 각국에 평화 교섭의 장이 마련되길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비나 │……하지만 당신도 단순히 라테라노의 교황님 대신 내 답변을 들으러 온 것만은 아니겠지.
오렌 │저는 일개 전달자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메시지를 당신과 의회에 전달할 책임이 있죠.
비나 │알겠다. 미안하지만 교황님께는 죄송하다고 전해 드려. 라테라노의 호의는 잘 알겠지만, 지금 의회는 런디니움 이외의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비나 │그리고 널 초대한 대공작에게도 전해. 난 그 어떤 신분으로도 라테라노에 가지 않을 거라고. 대체 언제부터 대공작의 계획에 대해 의회나 내가 참견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거지?
오렌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게 전달자의 본분이니까요.
ˇ
델핀 │오렌 아르지올라스. 정보에 따르면 전쟁 중에 고도딘 공작의 고속 전함에 있었지만, 라테라노를 대표해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어.
델핀 │대충 예상했던 대로군. 고도딘도 단 걸 좋아하나?
비나 │만약 그렇다면 지금 런디니움에는 대접할 만한 게 많지 않군.
비나 │하아…… 모처럼 의회가 쉬는 날인데.
델핀 │……그리고 재미있는 가십거리가 하나 있어. 그 라테라노 전달자가 당시 난민들을 이끌고 함께 승선했는데, 공작이 난민을 받아들이게 설득하려고 총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고 하더라고.
비나 │그래서?
델핀 │달아오른 총신에 데서 손에 화상을 입었다는데.
비나 │하. 갑자기 그런 얘긴 왜 해? 중요한 거야?
델핀 │쉬는 날이니까.
비나 │좋아. 이걸로 쉬었다고 치자. 다음은 어떤 정보를 봐야 하나…… 마법진 흔적 관련 조사?
비나 │응?
비나의 눈에 시어러 소위의 이름이 들어왔다. 또 한 통의 편지였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편지를 처리 대기 상자에 넣었다.
비나 │델핀, 여기……
인드라 │야, 비나! 네가 말했던 멍청한 도둑놈들 우리가 붙잡아서 교육을 잘 시켜줬어!
다그다 │몸이 약한 광석병 중기 말기 환자들만 골라 노리다니, 진짜 쓰레기지.
모건 │더 열받는 건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강한 자들한테는 굽신거리는 다른 놈들이, 그 녀석들 이름에 혹해서 가담하려 했다는 거야.
모건 │다행히 네 소식통이 빨라서 그놈들이 세력을 키울 기회를 못 얻었지만.
비나 │하아, 나도 밖에 나가서 몸 좀 풀고 싶었는데.
인드라 │걱정 마, 네 몫까지 때려 줬으니까.
인드라 │사례금 받아둔 거에서 네 몫은 따로 챙겨놨어.
비나 │잠깐, 이 일은 보호비를 받으려고 한 게 아니잖아……

인드라 │빅토리아로 돌아온 후에 과자 안 먹은 지 얼마나 됐지?
비나 │인드라……
인드라 │강도를 당했던 그 꼬마가 직접 만들었대. 다 제멋대로 이상한 맛인데, 마침 너도 평범하게 단 막대 사탕은 안 좋아했잖아.
다그다 │근데 그거, 자기는 못 구하는 사카린 대신에 감자, 당근, 지하 통로에 있는 원석충 체액까지 써 봤다는 것 같아……
인드라 │내가 전부 먹어 봤으니까 괜찮아!
델핀 │잠이 싹 달아날 것 같네. 나도 먹어봐도 돼?
인드라 │응, 잔뜩 있다고!
다그다 │……비나, 괜찮아?
비나 │괜찮아. 지금은 뭘 먹든 다 익숙하니까.
다그다 │그러면…… 의장 일은?
모건 │그래 그래. 뭐가 그렇게 걱정이실까나? 법률 초안? 공문서? 보고서?
모건 │우리가 도울 만한 일 있어? 특히 너한테 껄끄러운 놈들 줘 패는 일로!
인드라 │이번에 조수도 하나 들였어! 이파리 줄기처럼 비실비실하지만 호신용 복싱 기술 정도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인드라 │글래스고 패거리가 다시 커질 때라고, 비나. 우린 언제쯤 복싱장으로……
다그다 │……
모건 │……
인드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동료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보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았다. 묻지 말았어야 했다.
비나의 시선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훑고 있었다.
델핀이 비나 옆으로 다가가더니,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녀의 손에서 편지 몇 장을 빼냈다.
비나 │많은 시민들이 주목하는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답할 때가 된 것 같아. 대다수의 사람이 의회 토론을 보러 올 수는 없지만,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 라디오를 듣는 건 흔한 일이지.
비나 │도시 상황은 서서히 안정되고 있어. 세 번째 공사팀을 노포트 구에 파견하라고 이미 의회에 신청해 뒀어. 곧 우리의 고향이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모건 │예전보다 더 좋아지는 거지!
비나 │남은 일들만 정리하면 델핀, 너도 곧 린카딘으로 돌아갈 수 있어.
ˇ
요양원 환자 │어머? 다이앤 씨……
요양원 환자 │……소위님?!
시어러 소위 │난 이미 퇴역했다…… 사라.
요양원 환자 │어, 그러셨나요.
시어러 소위 │……
요양원 환자 │분명 지난번엔 요양원 초대를 거절하셨잖아요? 그러면 오늘은……
시어러 소위 │……아, 그저 너희 병문안을 왔을 뿐이야. 그리고 너한테도 고맙다 전하고 싶었어…… 기분 나쁘게 생각 마.
요양원 환자 │실은 이미 기억이 안 나요. 아시겠지만, 결정이 이미 제 머릿속을 침식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손을 떨고 계시네요.
요양원 환자 │제 앞에서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어요, 소위님. 저는 당신께 많은 지식을 배웠어요. 다행히 그것들은 전부 기억합니다.
요양원 환자 │아무래도 약물 중독 증상 같네요. 전쟁 중에 생긴 후유증인가요?
시어러 소위 │……진통제를 과다 복용했다. 그때 성벽 아래서 다쳤을 때부터.
요양원 환자 │……!
요양원 환자 │여기 남으셔야 해요. 요양원 의사를 찾아올게요.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요양원 환자 │아니면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소위님을 위해……
시어러 소위 │진통제를 더 찾아다 주려고? 훗, 그러면 고통은 좀 덜 수 있겠지.
요양원 환자 │그래서 오신 거죠? 도시에는 물자가 부족하지만, 원장님이라면 소위님께는 가능한 범위에서는 나눠주실지도 몰라요.
요양원 환자 │예전부터 델핀 님은 요양원과 저희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셨으니까요.
시어러 소위 │……
요양원 환자 │잠시 기다려주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시어러 소위 │……
그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면 배급이 부족한 진통제를 정말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어러 소위 │후우……
ˇ
요양원 환자 │어라…… 안 계시네?
ˇ
행인의 목소리 │어이, 앞에 보고 걸어!
시어러 소위 │……
행인의 목소리 │그 녀석한테서 떨어져. 뭔가 이상하지 않아?
시어러 소위 │의장실이 이쪽…… 일 텐데…… 큭……
행인의 목소리 │쓰러졌어! 또 불쌍한 광석병 말기 환자인가?
행인의 목소리 │가까이 가지 마! 저 녀석이 폭발하면 우리 모두 다 끝장이야……
시어러 소위 │……나는…… 아니야…… 쳇,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행인의 목소리 │사람 불러올게! 다들 멀리 떨어져, 떨어지라고!

시어러 소위가 길에 쓰러졌다. 저녁노을은 눈부시지 않았지만, 그의 눈을 자극했다……
어쩌면 그의 몸이 또다시 그에게 경고하는 걸지도 모른다…… 통증은 또 다른 생리적 욕구로 묻어야 한다고.
그는 자신이 전쟁 중에 고통에 굴복한 병사에게 가르쳤던 대로, 호흡을 가다듬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는 이미 고통에 짓눌려 있었다.
시어러는 불을 보았다.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타오르는 불을. 하늘 위의 불, 성벽의 불, 그의 몸에서 타오르는 불……
자신이 성벽 아래에 쓰러졌던 그날을 보는 것만 같았다.
런디니움의 웅장한 성벽이 드라코의 화염 속에서 맹렬히 타올랐다. 화염은 점점 더 크고 거세지더니 결국 하늘을 집어삼켰다.
그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눈을 가리려 했다.

??? │……소위……
??? │시어러…… 소위…… 빨리…… 일어……
시어러 소위 │……?

그는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보았다.

시어러 소위 │데…… 델핀 님?
델핀 │찾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소위.
델핀 │비나 씨에게 보낸 편지를 봤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부러 저를 피했죠. 제가 제공하는 의료 지원을 거부한다는 듯이.
시어러 소위 │……결국 그 사람은 내 편지를 읽지 않았군요…… 아닙니까, 델핀 님?
델핀 │당신이 편지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어러 소위 │……
델핀 │미안하지만, 여기선 당신을 도울 수가 없어요. 런디니움의 약품 공급 상황은 누구나 아는 일이죠. 그러니 당신은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시어러 소위 │……제가 달리 어디로 갈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델핀 │린카딘입니다.
시어러 소위 │……아니요! 저는……
델핀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소위. 이미 퇴역했다는 구실로 넘어갈 일이 아니에요.
델핀 │당신이 왜 주저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델핀 │당신을 배반하고 버린 '갈라바에 철 방패'의 상관들과 마주하는 게 두려운 거죠……
델핀 │나와 내 어머니께 충성을 다 하지 못한 것, 그리고 지금 이 꼴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요. 아닙니까?
시어러 소위 │모…… 모르겠습니다……
델핀 │소위,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도 굳세지도 않아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연약하지도 고상하지도 않죠.
델핀 │우리는 린카딘 사람입니다…… 여긴 원래 우리 고향이 아니에요.
델핀 │전쟁은 이미 끝났어요, 소위. 모든 병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어러 소위 │……
델핀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소위. 나도 함께 돌아갈 거니까요.
델핀 │가죠.
시어러 소위 │(흐느끼는 소리로) 하지만 이런 몸으로…… 집에 돌아갈 때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델핀 │내가 대비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날 찾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그냥 둘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시어러 소위 │……감사합니다, 델핀 님……
시어러 소위 │그렇다면 당신은 다시 런디니움으로 돌아오시는 겁니까?
델핀 │네, 비나 씨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하지만 비나 씨는 당분간 기다려야 하겠죠.
델핀 │우선 도시에서 요양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던 일이 끝나면 출발하죠.
시어러 소위 │……알겠습니다, 델핀 님.
델핀 │린카딘…… 저도 돌아갈게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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