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아일랜드의 감염자들은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당시에 나는 효과 좋은 억제제가 시중에 널린 줄 알았다."
작전 전
넓은 대지여 우리의 왕을 지켜 주소서 ♪
그의 백성과 그의 행복을 지켜 주소서 ♪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내려 주소서 ♪
우리를 즐겁게 노래하게 하소서 ♪
빅토리아, 나의 고향이여! ♪
성왕궁 서쪽 회당 알현실
1098년 10월 8일 9:45 P.M.
- 알현실에 들어온 뒤로 계속 그 노래를 부르고 있네.
▶-좋아하는 노래야?
비나 │인상이 깊을 뿐,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어.
비나 │어릴 적에,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양부모님이 침대 곁에서 자주 이 노래를 불러주셨지.
비나 │한때는 자장가 같은 거라 생각했지만, 두 분이 돌아가시고 시간이 흐른 뒤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두 분에게 '나는 뭐였을까'라고.
비나 │그날에야 비로소 깨달았어. 내가 이 노래를 모르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지. 이 노래의 멜로디는 평생 잊지 못할 거야.
- 그럼 혹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그……
비나 │그 국왕 말인가? 국왕에 대해서는 잘 몰라. 혈연 상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도……
비나 │박사, 네게 거짓말 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기억 속에 흩어져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짜 맞춰 보려고 한 적이 있어.
비나 │하지만 실제로 마주했을 때, 아주 조금의 친밀감도 느낄 수 없었지.
비나 │그는 국왕이고, 나는 거리의 문제아야. '빅토리아'라는 성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으니까.
비나 │그런 것보다, 지금은 머리를 써야 하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비나 │박사, 방금 전 공작들의 이야기를 다 들었겠지. 놈들에게 런디니움은…… 내 고향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체스말에 불과해.
비나 │닥터 켈시가 너를 체르노보그에서 구해 내게 데려오고, 빅토리아로 돌아올 계획을 세울 때는 이런 상황이 될 거라 상상도 못 했어.
비나 │하지만 이제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 '책임'이란 기묘한 것이지.
- 나 역시 로도스 아일랜드의 모두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
- 우리 둘 다 같은 처지다.
- 그 공작들도,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네가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비나 │나 역시 그 공작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안다고?
비나 │놈들이 여전히 '빅토리아'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꾸밀 필요가 있는 한, 나는 이 도시의 회복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어.
비나 │이건 서로 아주 잘 알고 있는, 필연적인 결과를 지닌 거래일 뿐이야.
비나 │내게 정말로 용기를 주는 건, 항상 뒤에서 나를 받쳐주는 이들이지.
비나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전쟁도 끝났어. 이제는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야.
- 비나……
비나 │왜 그러지, 박사?
▶- 어쩌면, 미래의 네 결정에 로도스 아일랜드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몰라.
- 로도스 아일랜드는 미래에, 네가 동의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지도 몰라.
비나 │……알고 있어.
비나 │위셔델이 남은 살카즈를 이끌고 철수하도록 너희가 도와줬지만,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비나 │하지만 이 전쟁을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 나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어.
비나 │그리고 살카즈의 경고는 우리 모두가 받았지.
비나 │살카즈가 철수할 때 모든 공작 함대가 일제히 병력을 움직이지 않은 건, 긴급한 소식을 받았기 때문이야……
비나 │거의 동일한 시각에, 대다수 핵심권 국가의 수도 상공에 일시적으로 무시무시한 재앙 구름이 모였어.
비나 │훗, 노골적으로 위협한 다음에 당당히 카즈델로 돌아갔지.
비나 │박사, 너와 닥터 켈시라면 잘 알 텐데. 그 오리지늄으로 놈들이 또 뭘 할 수 있는지를.
-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까지 몰리지 않는 한, 저들이 그 기술을 활용할 일은 없을 거야.
비나 │방어를 위해서만 쓰겠다는 건가? 확실히 놈들은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비나 │하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어.
비나 │귀족 놈들의 힘에 기대서 빠르게 세력을 키웠다가 얼마 못 가서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신흥 갱단은 많이 봐 왔지.
▶- 그래서 아미야도 함께 카즈델로 돌아갈 예정이야.
- 아미야가 그 오리지늄을 우리 감시하에 두도록 확보할 거야.
하지만 당신들이라고 해도 살카즈가 향할 필연적인 미래를 좌우할 수는 없다. 이 전쟁 끝에는 양쪽 다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그 젊은 섭정왕이 바라는 대로 살카즈는 구체적인 증오를 통해 단결했고, 자신들의 오리지늄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증오가 도착할 곳은 결국 하나뿐이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어디 서 있을까?

옥좌의 뒤에서, 황금 사자가 천천히 걸어 나와 어두운 옥좌 옆에 엎드렸다.
가웨인.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할 것처럼 자리해서는, 영원처럼 존재하는 주위 벽면의 조각과 함께 제국의 긴 시간에 걸친 흥망성쇠의 세월을 일순간 그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검은 눈동자는 당신의 모습을 비췄다.
비나 │……선생님?!
- ……
▶-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낸 건 처음이네.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괴물도, 환영도 아니니까.
내가 모습을 드러낸 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지.
비나는 생각지도 못한 위험한 길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더 성장해야만 하지. 그리고 그런 비나를 이끄는 건 그대다.
- 로도스 아일랜드는 애초부터 비나의 런디니움 관련 업무에 협력하고 있었어.
내가 신경 쓰는 점은 그런 게 아니다. 빅토리아에는 본래 흥망성쇠의 숙명이 있다. 거기에 내가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하지만 그대들은, 이 대지의 숙명을 마주하는 길…… 옅은 희망만이 존재하는 길로 비나를 이끌었다.
원래라면 나는 옛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나가 생명의 종착점으로 향하는 길을 같이 걸으려 했지. 하지만 지금, 나도 나 자신을 정담할 수 없게 되었다.
- ……우리는 이 이상 더 많은 사람을 휘말리지 않게 할 거야.
나는 비나를 이해한다. 그날이 오면 비나는 반드시 로도스 아일랜드 곁에 서겠지. 그대들 역시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 그대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답할 필요는 없다. 비나가 나 대신 봐주겠지.
그대는 그녀의 부하도, 선생도 아닌 데다 적대할 이유도 없다.
이미 알 거다. 그대와 그녀의 관계는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아직 우리에게는 재시도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비나는 그렇지 않다.
비나 │……
……비나, 나는 네게 생존에 관한 건 모두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다른 이의 희망이 될 수 있는지는 가르쳐줄 수 없지……
눈앞에 있는 인물이라면 가능할 터.
- 내가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어.
자 그러면 비나가 신뢰하는 이여, 비나의 손을 이끌어다오. 그대는 비나의 불씨이자 동력원일지니.
비나, 망설여질 때는 이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헤라.
ˇ
의장실
1098년 12월 10일 7:32 P.M.
델핀 │저기 비나 씨, 이 기계는 뭐야?
비나 │락락이 만든 실험작이야. 노동자들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다고 꼭 써 보라더군. 졸릴 때는 그냥 그대로 자는 편이 낫지 않아?
델핀 │그래서, 효과는 있어?
비나는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비고는, 앞에 놓인 문서를 쳐다보았다.
비나 │없어.
비나 │하지만 국가 반역자 '밀스카'의 소탕을 바라는 100명의 청원서에 40부 이상이나 답장하고 있으려니 아무래도 졸리는군.
비나 │이 건으로 충돌을 일으켰던 외부 시민들은 좀 진정됐나?
델핀 │응. 혼 씨가 주둔지에서 아직 연습 중이던 도시 방위군을 급하게 데리고 갔어.
비나 │……소란으로 번지지 않았다면 다행이군.
델핀 │양측 데모 참가자 중에는 병사의 가족이나 전우도 있다 보니까, 설득 효과가 놀랄 정도로 바로 나타났어. 하아. 아직도 '밀스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머리 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비나 │너무 탓하지 마. 먼저 약속을 어긴 건 의회니까. 우리 약품 공급에도 문제가 있었고, 그쪽 약이 확실히 일부 사람들에게는 살아갈 희망이 되기도 했어.
델핀 │그러나 그건 결국 잠깐의 위안일 뿐이야.
델핀 │비나 씨, 나는 비나 씨가 도시 방위군을 보낸 목적이……
비나 │폭력으로 상대를 내쫓기 위해서? 폭력으로 죄 없는 동포를 억압하는 건 가장 나약하고 효율이 낮은 방법……
비나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델핀 │그냥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야.
비나 │놀리지 마. 이 역할을 제대로 연기하기에는 아직 멀었어. 하지만 다행히 힘을 빌려줄,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있지.
비나 │선생님, 박사, 그리고 너…… 아주 많은 사람이.
비나는 기지개를 켜고, 락락이 만든 실험작을 떼어낸 다음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비나 │만약 네 첩자나 로도스 아일랜드의 동료가 공유하는 정보가 없었더라면, 나는 당황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야.
델핀 │하지만 '밀스카' 건은……
비나 │출처 불명의 위험 약물 판매, 고리대금, 살해 협박…… 그리고 살카즈와의 결탁……
비나 │모든 증거가 내 손안에 있고, 전부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했어. 일부 사람들이 수혜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그냥 놔둘 수는 없지.
델핀 │비나 씨, 알레데일 씨는……
비나 │이건 알레데일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델핀.
비나 │그 재앙 이후에 힘들게 얻어낸 평온을 누군가가 파괴한다는 건, 다들 원하지 않아.
비나 │……의회는 시민의 안전을 약속했지.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
델핀 │알겠어. 우리의 오랜 친구 하나가 알레데일의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 당신이라면 흥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델핀 │참, 박사에게 들은 조언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봤어.
델핀 │이 근래 발생한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일단 윈더미어령에 돌아가서 원래 내 것이었던 것들을 가지러 돌아가려고 해.
비나 │얼마나 걸리지?
델핀 │몰라. 하지만 박사가 말한 대로, 당신을 도우려면 어머니가 남기신 것들이 필요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거절했었지만.
비나 │고맙다.
델핀 │이건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해. 빅토리아, 윈더미어 영지, 린카딘. 어머니가 눈에 담아두셨던 것들을 내 눈으로 봐둘 필요가 있으니까……
델핀 │그래야만, 어머니에게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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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파라곤 부대 병사 │상관님…… 지금도 상관이라 부르는 걸 용서해 주십시오. 서, 설마 만나러 오실 줄은!
부상당한 파라곤 부대 병사 │제 신청서가 승인됐습니까?!
혼 │워커, 피트가 너를 데모 현장에서 데리고 온 뒤의 일은 들었다. 보아하니……
워커 │……그러면 그 일로 오신 게 아니군요. 실은 저 매일 라디오를 듣고 있습니다, 상관님.
워커 │당신이 재편을 담당한 도시 방위군이 수성포 인계식에 참가한 것도, 도시 바깥의 부속 훈련 구역이 막 준공됐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워커 │굳이 도시 밖에까지 나가서 직접 보고 왔는데, 훈련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어요. 제가 거기서 훈련하는 모습까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요……
혼 │미안하다, 워커. 네 도시 방위군 가입 신청은 승인할 수 없어.
워커 │……
워커 │알겠습니다. 아직 제가 도시 방위군이 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계속해서……
혼 │자기 몸 상태는 알고 있잖아. 이대로 다른 병사들과 훈련하면 스스로를 다치게 할 뿐이다.
워커 │하지만 제 병은 이미 안정된 상태고 약도 먹고 있습니다. 몸에 자라난 돌도 오랜 시간 아프지도 않았단 말입니다! 저는 이미 회복……
혼 │그거 '밀스카'의 약이지? 성분을 분석해 봤는데, 그건……
워커 │통증을 잠깐 억제할 뿐이죠. 알고 있습니다.
워커 │하지만 지금 저희에게는 이게 필요합니다. 의회가 배분하는 약으로는 부족해요. 아닙니까, 상관님?
워커 │최소한 그 약으로 통증을 줄이면 한 손으로 석궁을 드는 연습은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도시 방위군 시험을 통과해 보이겠습니다, 상관님.
워커 │"사는게 *빅토리아 비속어* 어렵더라도, 살아서 돌아갈 곳만 있다면 희망은 반드시 보인다." 이건 저희가 체틀리 카운티를 지키던 때 당신이 해 주신 말씀입니다.
'파라곤 부대'
'우리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기적이 막을 내린 후에는? 파라곤 부대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예전 파라곤 부대의 기적은 가울에 남아, 사관학교의 교과서에 실렸다고 혼이 얘기했었다. 그러면 우리는? 런디니움에 돌아가기까지는 실제로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빅토리아인이 다시 자신들의 도시를 탈환했다고 도시 전체에 선언한 순간, 우리 부대에서 가장 어린아이가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
나는 흥분해서 말했다. 집으로 돌아갈 거야. '어퍼컷' 복싱장으로 돌아가는 거다. 한나, 비나, 다그다도 같이. 너도 집에 돌아갈 수 있어, 라고.
하지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은 없어졌어. 나한테는 누나들밖에 없어."
모건 │다들 왔네. 내려갈까.
워커 │비나…… 의장입니까? 의장도 데모 건으로 저를 만나러 온 건지?
워커 │그러니까, 상관님이 저를 만나러 왔다는 건 그냥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겁니까?
모건 │혼은 비나가 올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너를 구하러 온 거래. 우리도 다들 그렇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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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디니움의 석양에 온도는 없다.
다행히도, 살아남은 자는 과거에도 그랬는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자는 여기에 적응해서,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샤드, 한때는 이 오랜 이동도시에 명예를 가져다준 건축물이지만, 지금은 그 그림자에 발을 들이려는 자는 거의 없다.
그날, 그 진홍빛 하늘 아래, 진정한 공포가 더 샤드 끝에 강림한 것을 잊은 자는 없다.
그리고 지금,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사람이 지나가며 길고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가볍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우리를 즐겁게 노래하게 하소서 ♪
빅토리아, 나의 고향이여! ♪
비나 │아무래도 더 샤드의 개조는 우리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군.
델핀 │로도스 아일랜드가 상당 부분 도와줬어. 약 공급이나 감염자 치료뿐만 아니라, 도시 재건이 진행되는 것도 엔지니어링부 동료들의 지원 덕분이었지.
델핀 │역시 그 이변이 모두에게 남긴 트라우마는 매우 깊었던 모양이야. 그렇기 때문에 더 샤드 개조 안건이 빠르게 가결될 수 있었지.
델핀 │마침 도시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던 오리지늄 결정들도 함께 정리할 수 있게 됐어.
델핀 │하지만 자경단 복구 담당 팀의 얘기로는, 에너지 동력층까지 영향을 끼친 탓에 예전 상태로 복구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해.
비나 │그러면 더 샤드의 핵심 기술 회수 작업을 위한 인선은 결론이 났나?
델핀 │일단 목록은 나왔어. 일부 기술자와 학자의 배경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 자들 배후에…… 전부 그들의 그림자가 있어.
비나 │그들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 대공작 몇 명이 이미 연락을 줬거든. 목록에 큰 문제가 없다면 신경 쓰지 말고 못 본 척하면 돼.
비나 │……나는 오히려 그들이 탑 내부 잔해 더미에서 가치 있는 걸 찾아줬으면 좋겠어. 그게 빅토리아에게는 좋은 일이기도 하고.
델핀 │흥,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해 준다면 확실히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겠지.
혼 │비나 씨, 델핀 씨.
델핀 │혼 씨? 당신은 분명……
혼 │마침 옛 동료를 만나러 와서요.
혼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파이프가 담당하는 도시 방위군 견습들의 훈련 성과를 체크하러 가려는 참이니까요.
혼은 기지개를 켰지만, 떠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건 │비나! 비나! 워커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상상도 못 할걸? 체틀리 카운티에서 우리랑 함께 왔던 데이비스 부부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비나 │……모건, 왜 너희가 여기에 있는지 알고 있어.
비나 │워커와 데모 건에 대해서는 의회가 결론을 내겠지. 나는…… 이 건에 손을 대서는 안 돼.
비나 │나는 단지 '밀스카'의 행방에 대해 얘기하러 온 것뿐이야.
모건 │……
워커 │두 분 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장을 곤란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워커 │저는 의회를 믿습니다. 의회에 아는 사람이 많은데, 다들 매우 좋은 사람들이죠.
델핀 │의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을 키우려는 사람도 있죠.
델핀 │하지만 '밀스카' 건의 해결이 빠르면 빠를수록 당신들에게는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워커 │……
한때 우리와 함께 도시에 돌입했던 병사는 노을 속에 서서 우리의 '심문'에 답했다.
비나가 의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비나가 바라기만 한다면.
비나는 이미 글래스고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고, 확실히 깨달은 것은 그날부터였다.

어쩌면 그날 오후, 내가 알던 비나는 이미 작별을 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도시 전체의 공장이 동시에 가동하면서 굉음과 함께 하늘까지 증기를 내뿜었다.
비나의 금빛 머리카락은 열풍에 흩날리며 일순간 눈에 고였던 눈물을 감추었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돌아보며 말했다.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왓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상한 대로 될 리는 없다.
나는 무섭다. 귀향은 이별이라는 것이……
나는 무섭다…… 비나를 잃는 것이.

"공장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어?"
"지, 진짜로 도시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잔뜩 있었어!!"
"너희는 왜 우리를 방해하지?"
"죄송합니다…… 공작의 명령입니다. 결론이 날 때까지 파라곤 부대는 더 이상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왜 나한테 석궁을 겨누는 거지?!"
"조금 전까지는 옆에서 함꼐 싸우지 않았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도시 사람들이…… 화내고 있어?"
런디니움
1098년 9월 28일 5:27 P.M.
도시가 화내고 있다.
모건 │비나,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연합군 부대가…… 철수하고 있는데?
인드라 │왜 갑자기 공장이 전부 가동하기 시작했지? 정보대로라면 살카즈가 도시 전체에 일시 계엄령을 내린 거 아니었어?!
다그다 │……이 공장은 알아. 여기 방향은 죽어도 못 잊지.
다그다 │저기는 요크 거리의 '마일스 공업'이야! 저쪽은 스코트 거리의 '코폴라 식품 공장'! 그리고 저기는!
다그다 │'콘솔리데이트', '핸킨스', '사우스 워커 운송'……
다그다 │(흐느끼며) 비나, 나, 나는 이 공장들이……
멈춘 곳, 폐기된 곳, 살카즈에 징용된 곳, 그리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어떻게든 가동하고 있는 곳.
도시 전체의 공장이 거의 동시에 전력으로 가동됐기 때문에, 성 밖 전장에서 도시로 정신없이 후퇴하던 살카즈는 이를 볼 여유도 없었다.
강철 기계의 숨결을 증기로 내뿜으며, 공장이 분노로 울부짖고 있다.
모건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비나 │그들이 우리를 도와준 거야. 런디니움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어.
연합군 군인 │꾸물거리지 말고 전진하십시오, 파라곤 부대. 모든 것을 끝장낼 때입니다.
연합군 군인 │연합군 제6종대 제10보병단 다이앤 웨버 중위가 명령한다. 전원 무기를 내리고 파라곤 부대를 호위하라!
비나 │공작들의 명령을 거역할 셈인가?
다이앤 │저는 군인이기 전에, 여기서 태어난 런디니움인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제 집이기도 하죠.
다이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 없습니다. 갑시다. 시즈, 조금만 더 버텨주시죠. 아직 함께 넘어서야 할 싸움이 남았어요.
다이앤 │우리의 것을 되찾기 위해!
공작 연합군 부대 중 한 명이 손에 든 석궁을 내렸다. 그러자 뒤이어 나머지 부대가 길을 열었다.
비나 │……파라곤 부대, 계속해서 전진하라!!
비나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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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공장을 최고 출력으로 계속 가동하라고 해. 살카즈 놈들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 앞으로 조금이면 돼!
캐서린 │공작 놈들은 도시 안에 살아남은 빅토리아인이 거의 없다고 믿게 하려는 수작이다. 그놈들, 포위만 하고 공격하지 않는 걸 정당화하려고 하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가 소리를 내줘야 하지 않겠나.
캐서린 │성벽 밖에 있는 놈들에게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줘라!

퍼시벌 │호흡이 잘 맞는군요, 캐서린 씨. 우리 쪽 사람들 한 번 믿어 보시죠. 다들 수완가니까요.
퍼시벌 │나인 일행도 다른 공장을 가동시키던 참입니다. 곧 도시 전체가 달아오를 겁니다.
캐서린 │……피스트, 너희도 돌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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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가동했나요?
가드 오퍼레이터 │그래! 박사의 계획대로 다른 공장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어!
가드 오퍼레이터 │하지만 시민 말고도 우리를 도와주는 녀석들이 있어…… 그 녀석들……
가드 오퍼레이터 │리유니온이라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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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딘 공작 │……이 도시에 이렇게 활력이 가득한 건, 요 근래 몇 년은 못 봤는데요.
고도딘 공작 │아까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합군 부대가 먼저 파라곤 부대에게 길을 열어줬다고 말이죠.
고도딘 공작 │이건 우리가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이번 결과, 만족스러우신지요?
캐스터 공작 │그래. 아무래도 우리는 '기적'의 영향력을 우습게 본 거 같아.
캐스터 공작 │이렇게 된 이상, 그 건의 준비를 먼저 시작하도록 할까.
ˇ
수수께끼의 용병 │보스, 아무래도 굳이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수수께끼의 용병 │저자들, 알아서 파라곤 부대를 통과시켰습니다.

??? │주변 복병을 후퇴시키고, 우리가 빼앗은 공장 쪽 지원으로 돌려.
??? │그리고 책임자들에게 전해. 내가 끝났다고 말할 때까지 화로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수수께끼의 용병 │넵.
??? │……
??? │어서 와, 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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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실
1098년 12월 10일 9:28 P.M.
비나 │그래, 의장실이다.
비나 │안심해라. 워커는 무사하다. 의회가 이 건으로 그를 괴롭힐 일은 없어. 다만 워커에게는 당분간 조심하라고 전해 줘.
비나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거기에도 뭔가 불이익을 줄지도 모르니까.
비나 │그리고…… 그쪽 진척은 어떻지?
비나 │……알겠다.
비나 │이제야 겨우 찾아낼 수 있겠군……
비나 │알레데일.
작전 후
긴장한 아이 │이, 이대로 가도 돼?
악의를 품은 시민 │그래. 가서 가격 물어보면 돼.
긴장한 아이 │아, 알았어.
ˇ
어린아이는 이동식 매대 앞으로 가서는,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숙인 채 나열된 상품을 보고 있었다.
친절한 상인 │폭죽을 사고 싶니?
긴장한 아이 │으, 응……
친절한 상인 │생일 축하? 아니면 선물? 그러면 이건 어때? 축하 선물로 사는 사람이 많다고!
긴장한 아이 │하, 하지만……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데……
친절한 상인 │최근에 창고에서 막 꺼낸 거라 그래. 먼지 좀 쌓여 있어도 멀쩡하다고. 자 그러면 이렇게 하자. 하나 사면 하나 더……
친절한 상인 │무슨 냄새지…… 상품! 내 상품에 불을 붙였어?!
악의를 품은 시민 │훗!
긴장한 아이 │……
악의를 품은 시민 │도망쳐! 멍하게 있지 말고!
상인은 매대에 붙은 불을 필사적으로 끄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매대는 결국 통째로 불꽃에 삼켜졌다.
폭죽이 터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장난'을 친 장본인은 이미 멍하니 있던 아이를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
"장난만 하려던 거 아니었어? 어, 어째서……"
"마족과 결혼한 놈은 이렇게 돼도 싸지. 꼴좋다!"

??? │불길이 거세지고 있아. 서둘러 사람들 피난시키라니! 나는 구출하러 갈 거니!
도시 방위군 순찰대 │알겠습니다, 대장!
캐슬브레이커가 연속으로 발사되며 불꽃을 갈랐다. 파열음과 폭죽 소리가 교차하며 악장을 연주했다.
와이번은 한 손에 창, 한 손에 상인을 들고 불꽃에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상인을 안전한 곳에 두고는 옆에 대충 앉아 검게 되어버린 얼굴을 닦았다.
ˇ

백파이프 │으윽, 미안하다니. 내가 가게까지 마카……
친절한 상인 │아니, 별거 아니니까.
백파이프 │이게…… 별 거 아니라는 거나?
백파이프는 아직도 폭죽과 함께 붉게 타오르는 현장을 가리켰다.
구경꾼은 점점 늘어만 갔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서 춤을 추는 주정뱅이까지 나타났다.
주정뱅이를 꾸짖는 소리, 소란스럽게 춤추는 소리, 그리고 폭죽이 터지는 소리까지 노을 아래 모든 소리가 얽혔다.
살카즈가 도시를 점령한 뒤로, 이 거리가 이렇게까지 시끌벅적해지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지만, 상인은 침착함을 되찾고는 웃었다.
백파이프 │……?
친절한 상인 │다들 이렇게 태평한 모습은 오랜만이군. 정말이지 그리워……
백파이프 │……하지만 당신네 가게 다 탔는데?
친절한 상인 │오늘은 기분 좋으니까 다들 폭죽으로 축하한 걸로 치자고!
친절한 상인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말하는 건데, 우리 아내는 오늘 밤 드디어 도시에서 나갈 수 있게 됐어.
백파이프 │……?
도시 방위군 순찰대 │대장님, 부상자는 없습니다. 소동 피운 놈을 붙잡아 올까요?
친절한 상인 │……어차피 부상자도 없는데.
백파이프 │죄를 저질렀다믄 우리가 처벌해야만 한다니. 그게 우리의 일이라니.
친절한 상인 │뭐, 아무튼 고마워. 아 맞다, 너 혹시 춤이나 연주 가능해?
백파이프 │응?
친절한 상인 │뭐, 이미 이렇게 됐으니까. 폭죽을 낭비할 수는 없잖아?
친절한 상인 │그래! 이렇게 큰 소동이라면 우리 아내에게 들릴지도 몰라. 전별로 치자고.
백파이프 │도시 치안 관리는 전쟁이나 농사보다 더 어렵다니.
백파이프 │뭐 다들 기뻐하는 거 보믄, 괜찮것지.
더는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백파이프는 그대로 길가에 놓인 짐 더미 위에 누워 몸을 뻗고 햇볕을 쬐었다.
백파이프 │으~음, 역시 짚더미보다는 못 하다니. 전혀 편하지가 않다니.
백파이프 │첸 햇아, 지금 어디 있나……?
ˇ
긴장한 아이 │어, 어째서 저 사람 가게를 태운 거야! 물건을 갖고 오기만 할 거라고 했잖아!
악의를 품은 시민 │보고 있자니까 짜증 나잖아. 마족 아내가 있으면서 부끄러운 줄을 몰라.
악의를 품은 시민 │뭐, 저놈 아내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 커헉!
악의를 품은 시민 │너 이 자식, *빅토리아 비속어* 누구냐?!
긴장한 아이 │……!
'밀스카' │도망 안 가?
긴장한 아이 │어, 어어!
악의를 품은 시민 │……왜, 왜 그러십니까?
'밀스카' │우리 고객에게 은혜를 베푸는 거지. 앞으로 또 협력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ˇ
'밀스카' │이 물건, 도시 밖으로 보낼 준비는 어떻게 됐어?
지친 용병 │바깥쪽 준비는 다 됐습니다. 사람 수도 다 세 놨고 문제없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의회가 당신을 지명수…… 찾고 있습니다.
'밀스카' │의회가 날 어떻게 하지는 못해. 지금까지처럼 쓸데없는 문제는 일으키지 말도록.
지친 용병 │어, 그게…… 이번에는 확실히 문제가 좀 있어서요.
지친 용병 │물건 중에 꼬맹이가 있었는데, 이게 진짜 두 손 다 들었단 말입니다.
납득 못 하는 아이 │나는 그냥 출발 전에 아빠와 만나고 싶은 것뿐인데 왜 안 돼?
납득 못 하는 아이 │밖에서 폭죽이 터졌다고 이 아저씨가 말했다고. 그건 아빠 폭죽이야!
'밀스카' │……
긴장한 여성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납득 못 하는 아이 │엄마, 엄마도 안 가고 싶지?
살카즈는 아이의 입을 막고 끌어안은 뒤, 눈앞에서 입을 닫고 있는 사람을 조금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긴장한 여성 │죄송해요. 애가 아직 적응을 못 해서요. 전쟁 중에도 아버지의 곁을 떠난 적이 없어서.
'밀스카' │당신 남편과의 거래 내용은 너희를 도시에서 내보내는 것뿐. 그 외의 일은 아무래도 좋아.
'밀스카' │남고 싶으면 좋을 대로 해. 나는 신경 안 쓰니까.
긴장한 여성 │……
나이 든 여성 │잠깐 괜찮을까? 이 사람들은 이런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패닉 상태가 된 것뿐이야.
나이 든 여성 │우리 모두 경험이 없어…… 안심해, 이 아이는 내가 볼 테니까. 당신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 게야.
납득 못 하는 아이 │근데 우리 어디 가? 아빠는? 아빠는 어떻게 해?
긴장한 여성 │아빠는 집에 볼일이 끝나면 만나러 올 거야.
나이 든 여성 │하아…… 카즈델 사람들이 도시에 들어올 때부터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밀스카' │당신은 군사위원회가 싫어? 테레시스는 당신들 이야기 속의 영웅 아니야?
나이 든 여성 │나는 눈을 뜬 날부터 런디니움에 있었지. 테레시스란 녀석은 몰라. 나는 너와 같은 런디니움인이야.
나이 든 여성 │그런데 말투를 보아하니 당신도 옛날에는 높은 신분이었겠구먼. 자네도 그 카즈델 놈들 때문에 이런 꼴이 된 거 아닌가?
'밀스카' │나는…… 훗.
나이 든 여성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얽히려는 사람은 그다지 없으니까.
나이 든 여성 │당신이 없었으면 아마 그 새 의회는 진작에…… 하긴 뭐 그게 보통이지. 뭐가 일어나든 높으신 분은 결국 아무것도 안 바뀌니까.
나이 든 여성 │그런 거, 인생에서 썩어 넘칠 정도로 봤어.
'밀스카' │그 새 의회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야.
나이 든 여성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들에겐 다를 게 아무것도 없지.
늙은 살카즈는 슬퍼하는 아이를 달래며 작게 한숨을 쉬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여성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너희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성실한 사람이야. 분명 널 찾으러 올 게야.
납득 못 하는 아이 │응…… 근데 도시를 떠나면 할머니는 어디로 가?
나이 든 여성 │옛 친구 둘을 찾으러 갈 거란다. 쌍둥이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들이 어떤 제약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구나. 군이 후퇴할 때 그 자매가 맞이하러 왔었지.
'밀스카' │……
나이 든 여성 │응? 당신 그 자매를 아는 겐가?
'밀스카' │아니. 슬슬 시간이 됐어. 짐 챙겨서 출발할 준비 해.
나이 든 여성 │잠깐. 당신, 이름을 알려줄 수 있을까?
'밀스카' │앞으로 얽힐 일은 없을 텐데.
나이 든 여성 │그냥 노인네의 부탁일 뿐이야. 감사하고 싶어서 그래. 나도 그렇고, 당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라도……
나이 든 여성 │이 감사는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코드네임에다가 할 게 아니야.
'밀스카' │……
'밀스카' │……알레데일.
나이 든 여성 │알레데일이라, 멋진 이름이네. 고마워.
'알레데일'. 원래라면 왕의 안식처에 묻혔어야 할 이름.
시간의 눈금조차 애매해진 어둠 속. 알레데일은 역사의 폐허에서 죽어가기를, 자신이 배신한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알레데일은 죽어가는 것도, 잊히는 것도 아직은 두려웠다.
증기 기사가 떠난 동굴에서 더러운 흙탕물이 손바닥에 떨어진 그때, 알레데일은 눈을 뜨고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 빛의 끝은 삶이고, 또 다른 굴복이기도 했다.
망설임은 3일이었을지도, 3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알레데일은 과거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

"언젠가 너는 다시 비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알레데일은 마음속에서 이를 되뇌며 조용히 빛 속으로 향했다.
ˇ
임시 물자 조달 사무실
1098년 12월 12일 5:32 P.M.
엘리시오 │메이저 씨 예약이 무효가 돼서 줄을 다시 서야 한다고?
엘리시오 │지금이야말로 약을 보급받지 못하는 감염자를 위해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침착한 문관 │죄송합니다. 저희 예약 시스템은 지금 점검 중입니다. 메이저 씨의 사망으로 인해 서류를 모두 다시 정리해야 합니다.
침착한 문관 │하지만 최근에 동료들이 모두 메이저 씨 장례 준비에 쫓기고 있어서요.
엘리시오 │……알겠습니다. 빠르면 얼마나 걸릴까요?
침착한 문관 │7 영업일 이내에는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구되면 신속히 연락드리겠습니다.
엘리시오 │……!
엘리시오 │생물 감염 총합 처리 센터에는 가보신 적 있나요? 감염 증상의 급격한 악화 때문에 실려온 시민들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요.
엘리시오 │전쟁이 있기 전까지는 런디니움의 일반인 대다수가 광석병 급성 발작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가장 도움을 못 받았단 말입니다.
엘리시오 │더 이상은 못 기다려요…… 밖에 지금 효과도 거의 없는 조악한 약이 대량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침착한 문관 │의견은 기록해서 생물 감염 총합 처리 센터로 신속히 공유하겠습니다. 다른 질문은 없으신지?
엘리시오 │……
엘리시오 │의장의 집무실이 어디인지 알려 주세요.
침착한 문관 │의장을 찾아오신 건가요? 그러면 예약을 확인하겠습니다……
다이앤 │굳이 안 물어봐도 됩니다. 의장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다이앤 │엘리시오 님, 따라오세요.
침착한 문관 │불편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 밖에도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에는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커피 감사합니다.
침착한 문관 │매우 귀중한 선물이군요.
엘리시오 │……
ˇ
엘리시오 │다이앤 씨, 당신은 화도 안 나요? 이건 저들이 해서는 안 되는 태도입니다. 제가 런디니움에 온 건……
다이앤 │저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서, 인가요?
엘리시오 │……아뇨,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다이앤 │하지만 당신은 마음속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닌가요?
엘리시오 │저, 저는 기분을 나쁘게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집을 잠시 빌려주신 건 감사하고 있습니다만, 감염자를 돕는 건에 대해서 제가 본 건 혼돈뿐입니다.
엘리시오 │모든 제도와 과정에는 서서히 확립되면서 개선하는 과정이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컬럼비아에 있을 때, 이런 일에 의견을 내는 게 제 일이었죠. 부디 양해해 주시길.
엘리시오 │저는 그저…… 대다수의 감염자를 돕는 것도 좋지만, 더 모범적이고 효율적인 절차를 가져갔으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런 부분에서 몇 단계 앞서 있기도 합니다.
다이앤 │엘리시오 님, 저는 컬럼비아에 간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고향에서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취급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다이앤 │기회가 된다면 꼭 가 보고 싶군요.
다이앤 │하지만 그 불쌍한 직원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런 귀찮은 일처리에 충분히 책임을 다하고 있기도 하고, 그 어떤 전임자보다 잘하고 있으니까요.
다이앤 │런디니움은 확실히 여러 문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죠.
엘리시오 │……다이앤 씨, 당신은 새 의회를 믿으시나요?
다이앤 │아뇨, 하지만 저는 그 의장을 믿습니다. 자 가시죠, 의장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엘리시오 │의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아시죠?
다이앤 │훗, 당신들 컬럼비아인은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없는 것 같군요.
엘리시오 │어…… 실제로 우리는 TV를 많이 보는…… 뭐, 됐습니다. 의장은 어디 계시죠?
다이앤 │메이저 님의 추모식입니다.
ˇ
엘리시오 │이쪽인가요? 여긴 사람이 너무 많은데 들어갈 방법이…… 어떻게 하면 의장과 만날 수 있을까요?
다이앤 │따라오십시오. 직접 연결된 길을 알고 있습니다.
엘리시오는 창문 너머 멀리, 세상에 널리 알려진 '비나 빅토리아'라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엘리시오는 출발 전에 다방면의 조사를 해 두었고, 빅토리아의 이 젊은 의장이 전쟁에서 세운 전설적인 공적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
이 의장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사한 옷을 입고 연설하는 그 아슬란을 보았을 때, 남은 건 실망뿐이었다.
비나 빅토리아는, 겉보기에 엘리시오가 기대하던 만큼 빛나는 인물은 아니었다.
??? │혹시 길을 잃으셨나요?
??? │조문하러 오신 거라면, 정문은 저쪽입니다.
엘리시오 │……!
델핀 │엘리시오 씨, 도와드릴까요?
엘리시오 │고, 고마워요.
다이앤 │……
엘리시오 │어라, 당신이 어떻게……
델핀 │엘리시오 씨, 당신이 런디니움에 오시기 전에 적심 의료와 당신에 관한 자료는 이미 의장실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엘리시오 │그러니까,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아신다는 거죠?
델핀 │네.
엘리시오 │의장도 요 며칠 제가 여기저기서 뭘 위해 교섭했는지 아시나요?
델핀 │네.
델핀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건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엘리시오 │의장은…… 제가 지금까지 접해온 귀족들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다이앤 │엘리시오 님!
델핀 │괜찮습니다. 다만 엘리시오 씨가 오해하고 계신 건, 여기는 컬럼비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들의 견해로 우리를 판단하는 건 오만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군요.
델핀 │먼저 어느 정도 규칙에 따른 후, 조금씩 상황을 바꾸는 실험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겁니다.
다이앤 │……의장이라도 불가능할까요?
홀 안에서 비나가 슬픈 표정으로 무언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델핀은 다이앤의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시선을 피했다.
다이앤 │……
엘리시오 │즉, 메이저 씨도 당신들이 말하는 그 규칙에 따른 제물이다 이겁니까?
델핀 │……아닙니다. 메이저 씨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죠. 당신이 말하는 '귀족들' 중에서요.
델핀 │메이저 씨는 원래라면 위험을 피해 노르망디령으로 가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혼란한 시기의 런디니움으로 와서 시민들을 구하려고 했죠.
델핀 │가능한 한 신속하게,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메이저 씨는 급성 감염 후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어요. 당신처럼 말이죠, 엘리시오 씨.
델핀 │우리가 메이저 씨와 언쟁을 벌인 것도, 그 과격함과 완고함이 자신을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델핀 │메이저 씨가 세상을 떠난 일에 감춰진 사정이나 음모 같은 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제물' 같은 것도 아닙니다.
엘리시오 │죄송합니다. 사정도 모르고……
엘리시오 │하지만 점점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왜 우리 적심 의료와의 협력을 거부하시죠? 우리는 단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뿐인데요.
델핀 │엘리시오 씨, 적심 의료 뒤에는 컬럼비아 국방부와 메이랜더 재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알고 계신지?
엘리시오 │물론입니다. 군과 기금이 우리 대주주니까요.
델핀 │……당신은 책임을 다하는 좋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완수하시려는 거라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셔도 좋습니다.
엘리시오 │으음…… 당신은?
델핀 │델핀 윈더미어. 델핀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귀사의 고객 조사는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엘리시오 │……!
엘리시오 │델핀 씨, 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저희라면 반드시 런디니움의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델핀 │제가 의회나 비나 씨를 대신해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이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건 우리입니다.
델핀 │하지만 지금은 일단,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메이저 씨를……
델핀 │그리고 몇 년에 걸쳐 계속된 혼란 속에서 떠나간 모든 분을 배웅하시죠.
애도의 종이 울리고, 파울비스트가 낮게 지면을 스친다. 비가 내릴 것 같다.
그러나 이 순간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눈물은 나지 않는다. 전쟁이 이 도시의 마지막 한줄기 눈물까지 짜냈기 때문이다.
ˇ
인드라 │너무 꾸물댔다고, 다그다. 모든 단서가 '밀스카'가 여기 숨어 있다고 말해주잖아. 또 뭘 더 조사하고 자빠졌어?
다그다 │너무 간단하다는 생각 안 들어?
다그다 │그리고 여기서 정체불명의 살카즈가 활동한다는 정보를 의회가 계속 받고 있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인드라 │칫, 혹시 진짜로 뭔가 있다고 해도 몸도 풀 겸 딱 좋겠지.
인드라 │그러니까 모건이랑 같이 따분하게 서류 정리하러 가는 걸 단호하게 거절한 거라고.
인드라 │훗, 그렇다고는 해도 어지간히 친구들을 생각해 주는군. 돌아오면 탑에 틀어박혀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지?
다그다 │……한나, 원래는 너도 본함에 돌아가서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어. 의료부 동료가 네 상황에 대해 몇 번이고 주의……
때마침, 둘은 도시 상공에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 반향이 모든 것을 한순간 정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인드라 │……
다그다 │……추모식 시작됐다.
인드라 │……
인드라 │후우……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야, 다그다. 가자고. 눈물 닦을 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그다 │한나, 넌 정말 못 말리는 녀석이야.
다그다 │만약 이 다음에 알레데일과 대치하게 되면 우리는 어쩌지?
인드라 │칫, 일단 패. 그 외에 성가신 일은 비나에게 맡기면 되니까.
다그다 │누가 있어!
??? │그 사람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당신들이 아니야.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못 만날 거야.
인드라 │누구냐?!

??? │'로즈 리버사이드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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