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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knights-Event/[E]위대한 서곡의 끝

[위대한 서곡의 끝] GO-ST-1 역사의 항로

"역사는 물결에 떠다니는 돛단배와 같아서, 아무도 그 방향을 알 수 없다."

 

 

빅토리아에 충성을 맹세한 탑의 기사 이사벨 몬터규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곡창과 같다." 라고.

번잡한 저택에서 숨죽이고 있는 그것은, 존재감도 옅은 데다가 조금 불쾌한 곰팡이 냄새마저 난다. 사람들은 오로지 무언가 넣어야 할 때만 그것을 떠올린다.

받아들이는 것.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역할.

그렇다면, 사람이란 밀밭에서 자라는 밀 한 포기일지도 모른다.

한평생 비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이삭을 맺어내는.

당신이 경험한 그 모든 것들이, 마지막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밀알이 되어 역사라는 이름의 곡창에 놓인다.

어쩌면 역사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전시회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건 │황금색으로 빛나는? 아아, 확실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인생이지……

 

격앙된 목소리 │비나, 이 검은 너의 것이다.

격앙된 목소리 │이것이 너의 운명이다.

비나 │아버지, 이건……?

 

모건 │비나! 무슨 짓이야!

모건 │당장 그만둬! 그러다 죽는다고!

비나 │하아…… 하아……

비나 │나는……

 

혼 │비나 씨! 지금입니다!

비나 │맡겨줘!

 

클로비시아 │비나, 너는 이 성을 떠날 때 어떤 신분이기를 바라지?

비나 │……

비나 │나는……

 

어쩌면 역사가 나아가는 방법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운명에 저항하는 것.

그리고 그 현실은 사나운 파도처럼 매번 당신을 바닥에 내리꽂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다시 일어나 버텨내야만 한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또다시 닥쳐올 파도를 대비해야 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이윽고 다른 방식으로 원점에 되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모건 │아, 생각났어. 다그다가 말했던 게 '맷돌'이었던 거 같아.

모건 │"역사는 맷돌과 같다" 였던가?

모건 │정확히 뭐에 비유했던 건지는 잊어먹었는데, 방앗간인가, 풍차인가, 아무튼 노을이 생각나게 하는 거였어~

모건 │하 진짜, 다그다의 그 잘난 척하는 말투가 옛날부터 너무 싫었다니까.

 

요컨대 내가 여기 남기고자 하는 것은 이처럼……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역사이다.

그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또한 그중 상당 부분의 당사자로서, 나는 이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고자 한다.

슬픔이라 불리는 교훈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기에, 이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담긴 너무나도 많은, 그리고 쓰라린 희생들이 잊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것은 너무도 복잡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전개될지 절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건 │아니, 아니다! 돛단배다! 딱 기억났다고~

모건 │역사는 물결에 떠다니는 돛단배와 같다. 어느 시대에도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험 많은 조타수는 있었지만……

모건 │노을과 강이 배를 어디로 이끌지 아는 자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모건 │*빅토리아 비속어*, 억지로 역사 소설 같은 말투 안 따라 해도 된다니까. 이건 내 책인데 왜 도덕 선생님 같은 비나 말투를 써야 하냐고?

모건 │어디 보자~ 내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어떡해야 하나……

 

이것은 거리의 불량배가 영웅이 되는 이야기. 그리고 용기와 우정, 신념과 권력의 이야기이다.

궁을 떠난 왕의 후손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영웅이 되어 친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이 기나긴 이야기는 우리가 떠난 그해 여름, 런디니움 노포트 구의 한 공장에서 시작된다.

 

모건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였어.

 

 

ˇ

인드라 │먼캐스터.

모건 │흠흠.

인드라 │……브리스톨.

모건 │그리고?

인드라 │셰퍼…… 드…… 아니, 글로……

인드라 │베어드! 힌트 좀 줘! 비나? 내가 망신당해도 괜찮아?

베어드 │네가 시작한 내기잖아. 난 아무 말 안 할 거야.

비나 │베어드 말이 맞아. 그건 불공평하잖아.

다그다 │힘내, 인드라. 빅토리아에는 이동도시가 못해도 60개는 있어. 하나만 더 맞추면 6분의 1이라고.

인드라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런디니움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런디니움이 내 집인데 뭐 때문에 수천 킬로나 떨어진 이동도시 이름을 외워야 하는데?

모건 │그럼 넌 우리 집 뒷골목 청소를 아~주 좋아한다는 게 되겠네.

인드라 │*빅토리아 비속어*, 아 진짜 이런 박식한 척하는 내기는 때려치워!

비나 │아 맞다 한나, 전에 같이 비디오룸에 갔을 때 기억해? 레인 브라더스와 싸우고 난 뒤에.

인드라 │기억나는 것 같기도? 푸른 잔디와 하얀 집이 있는 장원이 나오는…… 로맨스 영화였던가? 대사가 쓸데없이 길었던 것 같은데.

비나 │그 영화에 나오는 귀족 연회에서 여주인공이 가장 좋아했던 요리는……

인드라 │"시드머스 파울비스트 허브 크림 구이"!

인드라 │그래! 시드머스! 이제 열 개야!

모건 │하아 진짜…… 비나.

인드라 │비나, 넌 역시 최고의 리더야! 평생 따를게!

비나 │징그러우니까 그만해.

다그다 │……

베어드 │모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마셔.

모건 │베어드, 비나가 도와준 거 다 봤으면서…… 칫, 마시면 되잖아~

인드라 │모건! 올드 팔레이 거리 공장 쪽 수금도 너한테 넘긴다?

베어드 │행크네 샌드위치 가게 뒷골목 청소도 잊지 말고.

모건 │이럴 땐 글래스고 영역이 유독 넓게 느껴진단 말이야.

인드라 │흐흐, 언젠가 런디니움 전체가 우리 글래스고의 영역이 될 거야. 그럼 그 보호비도 전부 우리한테 들어오겠지! 런디니움 최고의 샌드위치도!

모건 │빅토리아 전체를 영역으로 해버리면 대체 누구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거야? 가울?

인드라 │귀족 놈들이라든가? 글쎄, 망할 놈들은 언제나 있잖아.

인드라 │노포트 구의 옛 이웃들도, 런디니움도, 이제 우리가 없어선 안 돼. 언젠가 글래스고가 런디니움 전체의 영웅이 될 거야.

다그다 │분명 그렇게 될 거야.

비나 │그래. 사랑하는 글래스고를 위해 건배.

글래스고 │글래스고 만세!

 

 

ˇ

담소를 나누는 귀족 │연극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담소를 나누는 귀족 │"빅토리아의 한 공작 영애가, 잘생긴 살카즈 청년을 '사랑'했다."

담소를 나누는 귀족 │"그리고 공작 영애에게 연심을 품었던 다른 자는 그 기분 나쁜 연적을 제거하기 위해, 마족에 대한 끔찍한 음모를 꾸며냈다."

담소를 나누는 귀족 │설마 그 《윈저 부인》의 작가가 그 정도 되는 고료를 받고도 이렇게 자극적인 작품을 쓸 줄이야.

담소를 나누는 귀족 │알레데일 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알레데일 │적어도 《런디니움의 묘지》의 결말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모릴 백작.

알레데일 │공작 영애와 살카즈 청년이 박해를 받은 끝에 도망치고, 결국 함께 목숨을 잃고 묘지에 묻힌다는 건 너무나도…… 진부한 결말이네요.

모릴 백작 │젊은 아가씨께서 저처럼 신랄한 평론가와 같은 취향을 가지셨다니.

모릴 백작 │눈물 흘릴 수 있는 이야기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알레데일 │누가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요? 캐번디시 공작? 아니면 살카즈 섭정왕?

알레데일 │눈물은 시야를 가리기 마련이에요, 모릴 백작. 숨겨진 의도가 있으면서도 유행하고 있는 작품은 때때로 공범이 되곤 하죠.

모릴 백작 │유감이군요. 알레데일 님이라면 타인에게 기대는 바람에 자유를 빼앗긴 여주인공의 운명에 공감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알레데일 │……

모릴 백작 │어이쿠 이런, 실례! 악의는 없었습니다. 저희 가문도 한때는 컴버랜드 가문과 친분이 있지 않았습니까……

알레데일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알레데일 │캐스터 공작님이 저를 밑바닥에서 구해주셨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분께는 감사할 뿐, 제 처지가 딱히 부끄럽지는 않아요.

모릴 백작 │그렇다면 오늘 이렇게 연회에 참석하셨으니, 알레데일 님의 발언은 캐스터 공작님의 의사로 간주해도 되겠습니까?

알레데일 │선의의 충고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네요.

알레데일 │카즈델 출신 용병을 상대할 땐, 허황된 이야기에 무심코 동정이나 연민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런디니움 사람들은 조금 더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알레데일 │런디니움 사람들에게 카즈델은 너무나도 먼 곳입니다. 그런 만큼 살카즈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눈물로 스스로의 판단력을 흐리지 마세요, 모릴 백작.

모릴 백작 │이런이런, 그런 말씀은 재능 넘치는 한 극작가를 죽이는 꼴이 될 겁니다.

알레데일 │공작이라는 지위를 지닌 자라면,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요.

모릴 백작 │그 또한 캐스터 공작님의 의사입니까?

알레데일 │당신이 그 극작가를 어떻게 평가하시든, 저는 아직도 《윈저 부인》이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모릴 백작님과…… 그리고 캐번디시 공작님께서도 한 번 접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알레데일 │"린수는 진창에서 기어 나올 다리를 얻을 수 없으며, 사람은 시간을 뛰어넘는 시야를 가질 수 없다."

알레데일 │캐번디시 공작님께서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로 인해 겸허하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그분이 다음 '윈저 공작'이 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알레데일 │물론, 저도 악의는 없습니다.

모릴 백작 │호오. 날카로운 견해는 마음에 듭니다, 알레데일 님.

모릴 백작 │시간을 뛰어넘는 시야라…… 확실히 그건 값진 것이지요. 그에 비하면 신분을 초월한 야망 따위는 싸구려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레데일 │부정할 수 없네요.

모릴 백작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한때 빅토리아에도 국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모릴 백작 │원래대로라면 왕위를 계승했어야 하는 후계자와, 왕권을 상징하는 그 검을 신경 쓰는 자도 있지요.

모릴 백작 │캐스터 공작님의 움직임을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분께서 다른 공작님들을 지적하실 때는, 부디 그분을 향한 시선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알레데일 │공작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릴 백작.

알레데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모릴 백작 │컴버랜드 경께서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실 생각이신지요?

알레데일 │새 겨울옷을 마련하기 위해 재단사와 약속을 잡아놓은 참입니다. 아시다시피 런디니움의 여름은 고작 며칠밖에 없으니까요.

알레데일 │그리고 겨울은 절대 늦는 일이 없죠.

모릴 백작 │그러시다면 더 잡지는 않겠습니다, 컴버랜드 경.

모릴 백작 │초연 티켓은 미리 보내드리겠습니다. 혹 캐스터 공작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다면, 캐스터 영지에서도 순회공연을 할 수 있도록 캐번디시 공작님께서 자금을 후원하실 겁니다.

알레데일 │……그럼, 공작님께서 부디 자신의 눈물로 눈을 가리지 않으시기를 바라겠어요.

 

 

ˇ

알레데일 │……

??? │숨 막히는 연회였네.

알레데일 │당신은?

 

??? │클로비시아라 불러도 돼. 그 독특한 백발, 네가 알레데일 컴버랜드구나.

클로비시아 │에일쉬 씨가 공작 저택의 새로운 계절 의상을 우리 쪽으로 주문했는데, 아직 네 옷은 정해지지 않았거든.

클로비시아 │미안. 모릴 백작과 한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문학에 대한 너의 조예는 확실히 명성에 걸맞은 것이었구나.

알레데일 │그런 칭찬을 받다니 영광이네…… 당신도 런디니움의 정세를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클로비시아 │그렇지 않아. 그저 가게에 있다 보면, 신사숙녀분들이 요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싫어도 귀에 들어와 버리거든……

클로비시아 │자 그럼,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니 슬슬 돌아가 봐야겠어. 디자인 정하면 언제든 에일쉬 씨를 보내도록 해.

클로비시아 │아 맞다, 알레데일 씨. 에일쉬 씨가 이 오늘자 《런디니움 데일리》를 전해달라고 했어.

클로비시아 │그럼.

ˇ

알레데일 │하아. 런디니움에 아직 보도할 가치가 있는 뉴스가 달리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네.

알레데일 │노포트 구에서 악질 폭력 사건?

알레데일 │이건……?

 

 

ˇ

인드라 │젠장!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불만인 노동자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야…… 그 작자가 새 조합장이 된 후로 공장에서 자꾸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불만인 노동자 │알만한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좀 용기 있는 노동자가 조합에 의견을 내면 수일 내로 사고를 당해서 의문사하고 있어.

인드라 │가자! 당장 그 자식한테 데려다줘. 얼마나 간땡이가 큰 놈인지 확인해 보자고!

 

베어드 │진정해! 조합 일과 거리의 일은 별개의 문제야. 그게 지금껏 해온 룰이었잖아.

인드라 │쓰레기를 전부 때려눕히는 게 내 룰이라고!

불만인 노동자 │알아! 당연히 알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로선 어쩔 수 없었어.

불만인 노동자 │조합은 공장에서 지들 맘대로고, 경찰이 수사할 방법도 없고.

 

모건 │그 새로 온 공장장…… 조니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놈이야?

불만인 노동자 │신분이 꽤 높은 것 같았어. 대번디크 공작의 친척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다그다 │캐번디시 공작 얘기야?

불만인 노동자 │맞아! 그거!

모건 │그 사람이 너희 돈이라도 탐내고 있는 거야?

불만인 노동자 │돈을 요구하는 건 아냐…… 하지만 그 사람이 공장장이 된 이후로 주요 직책 대부분을 외부 인사한테 뺏겼어.

베어드 │그래, 먼저 돌아가 있어. 우리끼리 더 논의해 볼게.

ˇ

인드라 │모건! 왜 아직도 망설이고 자빠졌는데! 그런 쓰레기 자식을 방치해도 좋다는 거야?

모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모건 │들었잖아? 이건 일반적인 조합의 깡패가 아니라고. 왜 공작을 뒷배로 둔 사람이 굳이 이런 작은 공장에 와서 권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걸까?

인드라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쓰레기를 두들겨 패는 데 이유가 필요해?

모건 │요즘 런디니움 정세가 불안정해서 몇몇 공작들이 암암리에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어. 너희들 최근 들어 거리에 낯선 얼굴이 늘어난 거 눈치 못 챘어?

베어드 │우선 방침을 정하는 게 좋겠어. 비나, 우린 네 의견을 따를게.

 

비나 │……

비나 │보호비를 받았으니, 마땅히 그에 맞는 일을 해야겠지.

비나 │공작의 후원을 받는다는 그 하찮은 공장장을 만나러 가보자고.

인드라 │그렇게 나와야지!

모건 │알겠어. 비나가 그렇다면야……

모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 공장에 대한 정보부터 수집해 두자. 베어드, 같이 가자.

베어드 │알겠어.

인드라 │야! 나는 왜 안 데려가!!

ˇ

다그다 │……

비나 │무슨 일 있어? 요즘 표정이 좋지 않던데.

다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지나치게 즐기고 있나 싶어서.

비나 │여기 있는 게 즐겁지 않아?

다그다 │시즈, 네게는 사명이 있잖아.

비나 │다그다, 말했을 텐데.

비나 │나는 이미 내 삶을 찾았어. 그런데 왜……

다그다 │네가 말하는 삶이라는 건, 이웃집 복수나 해 주자고 작은 귀족 집에 돌멩이나 몇 개 던지는 거야?

다그다 │시즈,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어.

비나 │다그다, 복싱장에서 이 얘기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다그다 │그렇다면 네가 답을 내리는 그날까지 네 곁을 지키겠어.

비나 │……

 

 

인생은 길다. 하지만 인생을 바꿀 정도의 분기점은 대개 몇 안 되는 짧은 순간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오후를 기억한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그 폭풍 같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노동자에 대한 망설임 탓에 인드라는 하루 종일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베어드가 또다시 중재 역할을 맡았다. 결국 저녁쯤에는 다 같이 핫도그와 맥주를 사러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이제 글래스고는,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강하게 묘사될 장면의 시작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그런 막연한 상상이 끝나갈 무렵, 그제야 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글래스고가 아닌, 비나였다는 사실을.

 

 

알레데일 │에일쉬, 무슨 일이야?

집사 에일쉬 │아가씨께서 항상 알렉산드리나 전하의 행방을 주시하고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집사 에일쉬 │왕립 경찰서장이 조금 전 노포트 구 지부의 폭행 사건을 재조사했는데요……

집사 에일쉬 │그게…… '매클래런의 집'이라는 비디오룸과 '글래스고 패거리'라는 조직이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집사 에일쉬 │이게 원본 서류입니다.

집사 에일쉬 │사건 관계자 파일이 뿌옇게 되어있기는 하지만, 아가씨께서는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흐릿한 흑백사진에는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화난 얼굴로 정면을 노려보는 인물이 찍혀 있었다.

'사건 관계자: 시즈(자칭)'

 

집사 에일쉬 │알레데일 아가씨, 이 분이 전하라 확신하고 계신다면…… 왜 직접 만나러 가지 않으시나요?

알레데일 │만나면 그다음은? 컴버랜드 공작 저택으로 모셔 올까? 아니면 캐스터 영지로 보낼까?

알레데일 │그분이 알렉산드리나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공작들에게 찍힌 이상, 더는 도망칠 수 없어.

집사 에일쉬 │……마치 이 도시에 산 채로 삼켜지는 것 같네요.

알레데일 │하.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어, 에일쉬.

알레데일 │지금 그분을 주목하고 있는 건 절대 우리뿐만이 아니야. 이 건은 내게 더 이상 결정권이 없어.

집사 에일쉬 │캐스터 공작님의 명령이라면, 아가씨께서 하실 일은 그분을 찾아 공작님께 모셔다 드리는 게 아닌가요?

알레데일 │에일쉬,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알레데일 │나는 한때 그분을…… 전하를 직접 뵌 적이 있었어.

집사 에일쉬 │하지만 뭐가 됐든 그건 이제 오래전 일이잖아요. 이제 와서 그 정체불명의 왕위 계승자가 그렇게까지 중요한가요?

알레데일 │단순한 예감일 뿐이지만…… 몇 해 전 그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분이라면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알레데일 │가자, 아직 만나봐야 할 노동자가 남아있어. 지난 몇 해 동안 전하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ˇ

흉폭한 공장장 │누구냐! 윽……!

다그다 │깔끔하게 처리했어.

비나 │이쪽도 전부 정리됐어.

모건 │찰리가 말했던 곳이 여기였구나.

모건 │최근 조합에서 이 낡은 공장에 짐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 아무래도 밀수인 것 같지?

베어드 │조니가 조합을 차지한 건, 아무래도 조합 자금을 빼돌리려는 것보다 더 큰 거래를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네.

베어드 │이 컨테이너에는 뭐가 든 거지?

인드라 │흥, 열어보면 되지……

모건 │한나! 그렇게 막 열면……

인드라 │이거……

베어드 │……

비나 │……오리지늄 무기야.

다그다 │빅토리아의 제식 무기는 아냐. 정확히 어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건 │캐번디시 공작의 끄나풀이 이 공장을 비밀리에 장악한 이유가, 이런 출처 불명의 무기를 런디니움에 들여오기 위해서였다고? 대체 무슨 속셈이야?!

다그다 │공작이 런디니움에 몰래 무기를 쌓아두고 있다…… 답은 하나지.

베어드 │근데 이미 우리 흔적이 남아 버렸는데……

베어드 │비나, 어쩌지? 아무래도 우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비나 │……

비나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는 있어.

비나 │한나, 불 좀 빌려줘.

 

 

ˇ

인드라 │우왓, 여기까지 공장이 불타는 게 보이잖아!

모건 │인드라, 잘도 웃을 기운이 남아있네?

인드라 │당연하지! 사악한 공작의 음모를 우리 손으로 저지했잖아!

베어드 │우리…… 화려하게 한 건 저지른 것 같네.

비나 │최소한 잘못된 일을 하진 않았잖아?

비나 │나머지는 경찰에 맡기자.

??? │런디니움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도시라고들 합니다만, 가끔은 안 그럴 때도 있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릴 백작 │설마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알렉산드리나 전하.

비나 │……!

다그다 │누구냐?!

모릴 백작 │저는 모릴이라고 합니다. 캐번디시 공작 저택에 손님 격으로 있는 이름 없는 말단일 뿐이지요. 아니면 운이 좋은 자라고 해야 할까요.

비나 │너, 공장의 일을 알고 있군…… 그렇다면 캐번디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겠지.

모릴 백작 │캐번디시 공작님의 근심을 함께 나누고 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아쉽게도 공작 각하가 런디니움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바를 모두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릴 백작 │지금 이 순간, 제 관심사는 오로지 알렉산드리나 전하, 당신뿐입니다.

비나 │……

모릴 백작 │전하, 이렇게 제 앞에 서 계시니, 당시 폐하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모릴 백작 │당신은 그분과 몹시 닮으셨습니다. 미숙한 정의감이나…… 그 정의감을 위해 대가를 치르려 하는 것까지 말이죠.

비나 │네놈, 뭘 하려는 거냐?

모릴 백작 │오늘 밤 당신과 당신의 동료분들이 저지른 불장난은…… 뭐 됐습니다. 전하의 가치에 비하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릴 백작 │따라오시죠. 적어도 당신의 동료들에게 살 길은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비나 │……너를 어떻게 믿지?

모릴 백작 │전하께 아뢰옵기는 매우 불경한 말씀입니다만, 사실 당신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모릴 백작 │물론 도망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저는 언제까지고 당신들의 행방을 염려하게 되겠지요.

비나 │……아니.

모건 │비나! 무슨 짓이야!

모건 │당장 그만둬! 그러다 죽는다고!

비나 │하아…… 하아……

비나 │나는……

인드라 │괜찮아, 아직 숨이 붙어 있어.

인드라 │비나…… 이게 무슨 일이야?

비나 │너희들은…… 빨리 여길 떠나.

비나 │공장이나, 이곳의 일은 모두 내 독단이다. 너희는 관계없는 거야.

인드라 │그게 무슨 헛소리야!

모건 │비나…… 저 사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왜 너를 전하라고 부르는 건데?

다그다 │……비나가 빅토리아의 왕위 계승자이기 때문이야.

다그다 │빅토리아의 전 국왕 알리스테어 2세의 딸, 알렉산드리나 비나 빅토리아지.

비나 │난…… 숨길 생각은 없었어…… 그저 의미 없을 거라 생각했을 뿐……

인드라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네가 누구인지는 안 물어봤다고. 왜 혼자서 다 짊어지려 하는 거냐고 묻고 있는 거다!

비나 │한나……

모건 │아직 말해야 할 게 많아 보이는데.

비나 │미안하다……

베어드 │서둘러! 지금은 얘기할 시간 없어. 당장 여길 떠나야 해!

모건 │어디로 가라는 거야?

베어드 │도시를 떠나야 해.

베어드 │지금, 당장.

비나 │그럴 수는……

베어드 │시간이 없어. 경찰이 공장을 발견하고 나면 도시 방위군과 협력해서 이동도시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할 거야. 그렇게 되면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방법이 없어.

 

베어드 │노포트 구는 걱정하지 마. 아직 내가 있잖아.

비나 │……

인드라 │야, 잠깐. 베어드, 너는 같이 안 가는 거야?! 모건, 왜 너도 말이 없어!

모건 │베어드가 생각하는 건 알겠어, 한나. 우리 집은 결국 글래스고니까.

베어드 │한나, 누군가 한 명은 집에서 너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해. 아니야?

다그다 │……

베어드 │누군가가 너를 주시하고 있어…… 미안, 비나. 우리로서는 널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진짜 거물들 앞에 서면, 글래스고는 너무도 나약하고 작은 존재야.

베어드 │비나, 너는 지금껏 노포트 구의 사람이었던 적이 없어. 그리고 노포트 구만의 사람이었던 적도 없지. 우리가 함께하게 된 첫날부터 난 그걸 알고 있었어.

비나 │전부 내 탓이야. 모두를 지키고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모두에게 더 큰 문제를 짊어지게 만들었어……

베어드 │그래. 혹시 이 일 때문에 자책하고 싶다면, 절대 잊지 마.

비나 │……?

베어드 │노포트 구에 빚진 게 무엇인지 기억해. 그리고 언젠가, 모두에게 그 빚을 갚으러 돌아와야 한다는 걸 이지 마.

비나 │맹세하지. 반드시 돌아온다고.

인드라 │그래! 여긴 우리 구역이잖아. 언젠가 되찾아 주겠어!

비나 │하지만 너희들, 정말 나와 함께 갈 생각이야? 내 위험을 너희까지 같이 뒤집어쓸 필요는 없어.

모건 │나는 네 참모잖아, 비나. 그냥 둘 수는 없지.

인드라 │누가 너한테 덤비면 내가 대신 패줘야 하잖아!

다그다 │……비나가 간다면, 나도 따라간다.

베어드 │잊지 마, 비나. 네가 어디로 가든, 글래스고는 항상 네 곁에 있어.

베어드 │나도 이 구역을 지키겠어. 여긴 우리가 함께 얻어낸 곳이니까.

비나 │약속이다, 베어드. 반드시 모두와 함꼐 돌아오겠어.

베어드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을게.

베어드 │모두 무사하길 바라며, 글래스고를 위하여.

전원 │글래스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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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사무원 │이, 이게 무슨…… 이, 이분은 캐번디시 공작가의 사람입니다!

당황한 사무원 │당장 본부에 연락하겠습니다. 런디니움이 뒤집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 │……이번 건은 덮어라.

당황한 사무원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에 연락을…… 네? 덮으라고 하셨습니까?

??? │이번 건은 내가 사람을 보내 처리하도록 하지. 앞으로의 일들은 너희 노포트 구 경찰서와는 무관하다.

??? │안심해. 왕립 경찰서 서장은 결코 너나,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추궁하지 않을 테니.

당황한 사무원 │저, 정말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지……

??? │미래를 알 수는 없지. 하지만 미래가 향하는 방향을 이끌 수는 있어.

??? │이 도시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 너는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겠어?

당황한 사무원 │그건…… 네, 알겠습니다!

??? │비나, 이게 네 운명이야.

 

 

비나의 정체를 알았을 때, 나는 놀라움보다는 그 놀라움에서 나오는 기쁨이 더 컸다.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상이 떠올랐다…… 사라진 왕가의 마지막 후손, 거리에서 시작된 영웅 전설.

이야기란 종종 이별로 시작해, 재회로 끝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야기처럼 아름답지만은 않기 마련이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는 길에 올라섰을 때까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토록 험난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수년 후, 고향 땅에 다시금 발을 디뎠을 때, 다그다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역사는 물결에 떠다니는 돛단배와 같다. 어느 시대에도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험 많은 조타수는 있었지만……"

"노을과 강이 배를 어디로 이끌지 아는 자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알레데일 │……

갱단 멤버 │어이, 누구냐? 복싱하러 온 건가?

알레데일 │여기가 글래스고인가? 시즈라는 사람을 찾고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그 사람이 여기 리더일 텐데.

갱단 멤버 │우리 복싱장의 리더는 베어드라는 사람밖에 없어.

갱단 멤버 │잠깐…… 그 옷차림, 너 귀족이냐?

갱단 멤버 │돌아가라. 여긴 널 환영하지 않아.

알레데일 │……실례했네.

베어드 │기다려.

베어드 │비나를 찾고 있어? 비나의 지인?

알레데일 │그래…… 오랜 친구야.

베어드 │……

베어드 │비나는 멀리 떠났어. 용건이 있다면 내가 대신 전해주지.

알레데일 │별일은 아니야. 그냥 친구로서 근황이 궁금했을 뿐.

알레데일 │괜찮다면, 무사하길 바란다고 전해줘.

베어드 │응, 비나라면 괜찮을 거야. 전해줄게.

 

알레데일은 몸을 돌려, 조금 지저분한 복싱장을 떠났다. 눈앞의 인물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안하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 그리고 거기에 찍혀있는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문득, 예의 중후한 목소리가 다시금 그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알레데일 컴버랜드."

"언젠가 너는 다시 비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