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knights-Event/[R]미즈키&카이룰라 아버

[미즈키&카이룰라 아버] 시간 각인 비석:침묵의 시대

 

 

PART 1 최후의 도시

 

 오전 8시 정각,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폭우는 사정없이 땅을 때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늘의 분노에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그저 기계적으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생존의 희망과 죽음의 두려움에 비해, 빗속을 걷고 있는 것 자체는 확실히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황야로 도망친 사람들이 시본에게 도륙당할 때, 그들은 곧 철옹성 같은 도시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

 켈시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지금 성벽에 올라서서 지평선까지 이어진 난민 행렬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굳게 찌푸려진 미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샤믈라가 완전히 폭주하면서 고요함은 모든 해안선을 삼켜버렸고, 뒤이어 테라 대지의 모든 소리는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다. 시본과 시테러는 줄지어 육지로 향했고, 바닷속에 고립된 에기르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각국의 군대도 연이어 와해되어 테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이렇게 된 이상, 대통합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카시미어의 대기사단도, 라이타니엔의 게사츠슈베이터도 시본의 파도 앞에서 고작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황제의 칼날이 목숨을 대가로 일궈낸, '국가'로 이뤄진 방어선은 확실히 인류를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줬지만, 그것도 단지 인류가 궤멸당할 시간만 벌어준 것에 불과했다. 몇 달 후, 시본이 '국가'의 성질에 적응하고 그 이질적인 장벽을 뚫고 나왔을 때, 인류는 자신에게 더 이상 그들을 막을 병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컬럼비아는 첨단 기술로, 사미는 고대 아츠로 인류의 퇴로를 개척하려는 한편, 염국은 각국의 남은 군단과 함께 인류의 마지막 방벽을 구축했다. 군인들은 일치단결 하여 결사의 각오로 마지막 요새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라도 오래 버티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깃발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불굴의 의지로 사투를 벌이던 염국의 마지막 천사는 멀어지는 난민들의 대열을 바라보며, 영원에 가까운 슬픔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고요함이 다시 찾아온 그날부터 켈시는 이미 인류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사의 기적적인 생환과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그녀는 어떻게든 인류를 연명시키기 위한 도시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베헤모스들에게 간청했고, 또 몇 명의 비스트 아리스토크랫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고대 인류의 기술을 회수하여 마침내 이 장관을 이루었다.

 인류 최후의 도시.

 이러한 기술, 이러한 연결고리, 이러한 엔트로피 원칙을 거스르는 응용 하나하나가 세상을 가히 놀라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는 인류에게 갇힌 족쇄를 부수는 희망이었을 그것들이, 지금은 인류가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시가 우려하는 것은, 이 도시가 모든 생존자를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즉, 이 도시가 사람들로 넘쳐날 때면 그녀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상당수의 사람은 희망 뒤에 숨겨진 절망에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결코 선량함이나 자비, 혹은 열정 등에 의해 지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미야는 이 일 때문에 벌써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미야는 반드시 모질게 마음먹고 결단을 내려야만 했으며, 향후 도시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혼란에도 대비해야 했다.

 이는 순전히 그녀가 로도스 아일랜드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나도 잔인하다는 걸 켈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그녀조차도 속수무책인 건 사실이다.

 만약 이것이 소를 희생하여 대의를 이룰 수 있는 거라면, 켈시는 자신의 그 영원에 가까운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의를 희생한다고 해도, 종족의 존속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희미한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켈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켈시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귓가엔 아무 소리도 닿지 않았다.

 빗방울이 그녀를 무너뜨리려는 듯 쉴 새 없이 그녀를 내리쳤다. 켈시는 한숨을 쉬고 박사에게 들어가 비를 피하라고 손짓했다.

……

 하지만 켈시가 몰랐던 것은, 저 멀리 이베리아 옛 왕도에서,

 이샤믈라가 공간을 뛰어넘어 켈시 옆에 있는 박사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행위만이 유일하게 그녀에게 남겨진 인간성의 발현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박사의 곁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끊임없이 위매니를 재촉했던 걸지도 모른다.

 자기 인간관계의 안전지대가 이제는 종족 전체를 파멸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스카디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라는 이 집단에 박사라는 마지막 개체만 남을 때까지 말이다.


 

PART 2 

 

 마지막 기사는 이샤믈라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고요함은 이미 찾아왔고, 시본은 지체 없이 육지를 향해 돌진해 갔다.

 미즈키는 촉수로 시테러를 물리치며 박사가 다치지 않도록 열심히 지키고 있었다.

 해신이 깨어나고 하늘을 찌르는 파도가 요동치는 지금, 박사를 바닷속 작은 섬에 고립시키는 것은 박사를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

 박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미즈키는 박사를 등에 업고 육지를 향해 헤엄쳤다.

 몰려드는 시테러는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지만, 시본이 앞길을 막았을 때, 위매니 전체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미즈키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집단에 속하는 개체가 어찌 집단의 의지를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이샤믈라의 페르몬이 미즈키의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그것은 미즈키가 이 인류를 남겨 두길 원했다.

 절대 안 된다.

 박사는 반드시 살아서 육지에 돌아가야 한다.

 미즈키에게 인류의 운명 따윈 관심에도 없다. 하지만 그는 박사를 걱정하고, 박사는 인류가 이대로 멸망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해신을, 위매니를 거절하더라도 기어이 박사를 육지에 돌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동족들의 방어선을 뚫고 박사를 해변에 내려놓았으며, 웃으면서 박사에게 돌아가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라면서, 자신은 시본을 막아보겠다고 했다.

 "나도 시본이니까. 그들이 나를 믿어줄 거야." 미즈키는 이렇게 박사에게 말했다.

 고맙게도 박사는 그의 말을 믿었고 그곳을 떠났다.

 드디어 미즈키는 진정으로 박사를 위해, 로도스 아일랜드를 위해, 인류를 위해 조금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미즈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페로몬 표현을 조절했다.

 순간, 시본들은 혼란에 빠졌고, 동족이 왜 갑자기 위매니 전체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바탕의 곤혹을 치른 뒤, 위매니는 이 적대적인 개체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곧바로 시본들은 방향을 바꿔 심해로 향하고 있는 미즈키에게 몰려갔다.

 아득히 긴 시간 동안, 미즈키가 보낸 적대적인 페로몬은 위매니의 집단의식에 뚜렷하게 나타났고,

 마치 흰 종이에 떨어진 핏자국처럼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사라지고 말았다.

 


PART 3 

 

 미즈키의 의식은 바닷속에서 흩어져,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

 육체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파리처럼 생긴 시본의 몸이 물속에 나타났다.

 장기는 아직도 생명의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피비린내에 몰려온 시테러들은 미즈키를 둘러싸고 빙빙 돌았다.

 그들은 동족의 완전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때가 오면 그들은 동족을 집어삼켜 위매니의 순환 속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미즈키는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기다리다 지쳐서일까, 아니면 이샤믈라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서일까, 시본과 시테러는 더 이상 한 개체의 생사에 집착하지 않고 해수면에서 집결했다.

 계속 가라앉는 그를 혼자 남겨두고.

……

 육체에 얼마 안 남은 마지막 에너지를 소진한 뒤, 미즈키의 핵심 장기는 마침내 고동을 멈췄다.

 죽음이 조용하게 다가왔다.

 몸은 움츠러들기 시작했고, 널브러져 있던 촉수도 수압에 눌려 뭉쳐버렸다.

 끊임없이 쪼그라들고, 끊임없이 퇴행한다.

 마침내 자그마한 세포로 변해 심해의 해류를 타고 정처 없이 떠다녔다.

……

 그러다가 그는 시들어버린 나뭇가지에 닿았다.

 그것은 이미 죽어버린 심해의 거대 생물이자, 시본의 선구자인 '만연의 가지'였다. 미즈키와 마찬가지로 그것의 의식은 이미 죽음을 맞이했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거대한 유해만 남아 있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잊은 지 오래됐고,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도 그저 시들어 썩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들어버린 거대 생물이 수많은 시본을 위해 지극히 중요한 식량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은 수많은 시본 유체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시본 유체 한 마리가 미즈키의 세포를 발견하자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다가와 이 동족의 선물을 삼키려고 했다.

 하지만 유체의 입이 세포에 닿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가지 하나가 미즈키를 겹겹이 감싸 안았다.

 시본 유체는 재빨리 떠났다. 이곳엔 너무나 많은 식량이 있었고,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굳이 고귀한 망자와 양분을 놓고 다툴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미즈키의 여정은 종점에 이르렀다.

……

 몇 년 후, 시들어버린 가지에서……

 짙푸른 입사귀가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