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1 재회
시간의 흐름은 바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지워버렸다. 시본이 물러나면서 에기르는 다시금 교만하고 폐쇄적으로 변했고, 육지 국가들도 다시 의혹과 대립 속으로 돌아갔다. 이 땅에 존재하는 위협은 시본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오리지늄에, 재앙에, 그리고 미지의 고난에 맞서야 했다.
로도스 아일랜드는 여전히 대지를 누비며 광석병을 억제할 약물을 개발하는 한편, 인류의 상호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책임자로서, 박사가 어깨에 짊어진 책임 또한 막중했다.
그러나 매년 어느 특별한 날이 되면, 박사는 차를 타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나 튤립의 호송 아래 이베리아 경내에 들어간다. 그리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홀로 지내다가, 다음날 태양이 뜨면 다시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와 숨 돌릴 틈도 없는 일에 다시 뛰어든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자 바닷물은 짙푸른 형광빛을 내기 시작했다.
박사는 잔잔한 파도를 밟으며 모래사장에 반짝이는 발자국을 남겼다.
사람들이 보기에 박사는 그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박사도 평소처럼 난제를 해결하거나, 외근 오퍼레이터를 이끌고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의 잡다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거나, 바닷가를 걷는 게 아니라.
하지만 박사 자신에게는 이런 간단한 행동에도 의식성이 갖춰져 있었으며, 심지어 멘탈 케어의 효과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박사를 전지전능한 '신', 또는 기계와도 같은 초인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박사도 누구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는 고뇌, 쏟아낼 수 없는 슬픔이 있을 것이다.
대지는 이러한 감정을 포용할 수 없지만, 바다는 그럴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털어놓더라도 바다는 거기에 응답해 준다.
'쏴아', '쏴아'
바다는 언제부터 이렇게 따뜻해졌을까? 박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한 오퍼레이터가 파도를 가라앉혔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남긴 것이 바로 해마다 나타나는 이 형광빛의 파도였다.
그래서 박사는 해마다 이곳으로 찾아온다.
홀로, 명상하며,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인간의 치밀한 변명과 자연의 끝없는 울림에는,
다 그럴만한 의미가 있다.
왔다가 돌아가고, 묻고 대답한다.
이런 행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속의 위안을 얻는다.
물론, 마음에 뚫린 구멍은 메울 순 없겠지만, 이것은 인간이 계속해서 이 행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유도한다.
미즈키는 들릴까?
미즈키는 들릴 것이다.
그는 굳게 믿었고, 그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
박사가 모래사장을 거닐자 파도가 발목을 붙잡기라도 하듯 그의 발에 찰싹 부딪혔다. 그리고는 다음 파도와 함께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짙푸른 형광빛이 박사의 신발에 남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PART 2 추억
이샤믈라는 실패했다.
이샤믈라는 위매니의 판결을 태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싸우기 위해 태어난 자신이 어떻게 고작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잔가지 따위에 패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싸움 이후로 그것의 길은 더 이상 위매니가 탐색하는 방향이 아니게 되었다. 필요 없게 된 이상, 그것은 자신을 봉인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 스카디라는 의식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
스카디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녀는 파도를 일으켜 육지를 가로지르며 애써 무언가를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가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꿈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깨어난 직후, 기억은 꿈과 함께 사라져 버렸고, 그녀는 꿈의 내용을 애써 떠올리려 했지만, 머릿속에는 위매니의 배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원했던 게 아니다.
그녀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스카디는 왜 동족에게 이러한 느낌이 들었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토록 친절했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녀를 위해 목숨마저 바칠 수 있었다.
그 행위에는 광신이나 지배가 없었으며, 오직 평등과 헌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위매니와 함께하거나 위매니를 멀리하는 것 중에서, 스카디는 후자를 선택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불현듯 혐오감이 솟구치기 시작했고, 설령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녀는 시본과 같은 편에 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이유는 그녀 자신도 모른다.
어떻게 동족을 혐오하는 시본이 존재한단 말인가?
스카디는 답할 수 없었다.
육지…… 육지……
잠재의식이 그녀를 육지로 헤엄치도록 이끌었다.
그곳엔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시본이 인간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스카디는 모른다.
그녀의 의식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일관성마저 잃을 정도로 모든 측면에서 시본의 본능과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해안 가까운 곳에서 고개를 내밀었고, 광활한 해변을 둘러보았다.
후드를 뒤집어쓴 인간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환희에 찬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인간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뒤로는 그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어비설 헌터스, 에기르, 그리고 바다……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억이 그녀의 영혼을 무너뜨렸다.
PART 3 하소연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울피아누스, 로렌티나, 글래디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스카디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스카디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인간이 아닌 괴물이, 시본이 아닌 인간이,
파도에 숨어 조심스럽게 아름다운 상징을 주뼛주뼛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모습을 드러내기 무서웠다.
설령 박사가 자신을 용서한다 해도, 그녀는 자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으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속의 공백을 조금씩 채워나가다, 더 큰 죄책감에 잠기는 것뿐이다.
생존은 되려 짐이 되었고, 죽음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공허의 구상이 되어버렸다.
……
갑자기, 스카디의 목구멍에서 노래가 솟아올랐다.
이미 수천 번은 불러 음절, 발성이 완벽의 경지에 이른 노래였지만,
지금 들어보니, 마치 바닥에 떨어진 유리처럼
산산이 조각나 다시 원래대로 복구할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본능이니까.
노래를 부른다고 속죄할 수도, 슬픔을 가라앉힐 수도 없겠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떨리는 마음 때문에 음정은 불안해졌고,
눈물은 혀끝에 떨어져 씁쓸함이 되어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갔으며,
목구멍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오열로 인해 자주 끊겼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청중이 필요 없다. 청중을 바라지도 않는다.
만약 노래 부르는 것이 그녀의 생명에 남겨진 유일한 의미라면,
계속 부르자.
……
해변에 있던 박사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문득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귓가에는 파도 소리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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