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깍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는 건 좋지만, 저 화려하고 요란한 광고판에 맞지 않도록 조심할 것.
작전 전
내스티 │(살카즈어) 응결하라.
격렬한 복싱 소리가 이어졌다.
주문이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내며, 와이번의 모든 주먹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땀에 젖은 낡은 글러브 위에는 '트리마운츠 공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함참 후, 와이번이 동작을 멈추었다.

사리아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 스파링 상대가 되어줘서 고맙다, 내스티.
내스티 │네 평소 운동량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사리아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인데, 사람들에게는 인사 했나?
내스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마리암은 말할 것도 없고, 뮤엘시스는 지금 쉐라그에 있거든. 거기에, 인사과랑 구조과의 새로 온 두 주임은 별로 안 친해서.
내스티 │그리고 저스틴이랑 퍼디낸드는, 둘이 따로 만나게 하는 게 낫겠지……
내스티 │자기가 어떤 고위층의 연회에서 빠져나왔다는 얘기, 새로운 이론으로 과학계의 황제가 될 거라는 얘기…… 서로가 서로에게 청중이 될 수 있잖아.
내스티 │게다가 나는 잠깐 출장 다녀오는 것뿐이야.
사리아 │엔지니어링과 주임의 출장이 흔한 일은 아니지.
사리아 │특별구 정부가 '프로젝트 호라이즌 아크'의 자원을 통합하고, 스텔라리아의 남은 기술을 기반으로 부유 기술 분야의 혁신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우리의 신청을 승인했다.
사리아 │하지만 동시에 컬럼비아 전역의 모든 과학기술 기업에도 편의를 제공했지. 그걸 위해 아예 섹터 하나를 특별 배정할 정도로 말이다.
사리아 │입주 인원 명단을 보니 주류, 담배, 아츠 유닛 및 오리지늄 제품 관리국의 관리들뿐 아니라, 메이랜더도 있던데……
사리아 │덕분에 우리 계획서도 수천 개의 계획서 중 하나로 전락했지. 우리에게 섹터 전체의 기초 공정 지원을 맡긴 건, 라인 랩이라는 최초 제안자에 대한 가장 큰 예의다.
사리아 │정부 관리들, 기업 대표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섹터는 매우 떠들썩할 거다. 하지만 내스티, 너는 이런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해.
내스티 │어쩐지, 그동안 불평이 하나도 없더라니…… 사리아 총괄.
사리아 │……
내스티 │별깍지는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지만, 하늘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이제는 되돌릴 수 없어. 상식이 뒤집히고 나면, 주목받지 못했더너 곳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는 법이니까.
사리아 │자연스럽게? 특수 대출 정책이 나온 후, 기업의 3분의 1이 '하늘 사업부'를 증설했고, 중소기업들도 이 '하늘 열풍'에 편승하려고 대가를 따지지도 않고 줄줄이 업종 전환을 하고 있다.
내스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본데, 나는 그런 정치 놀음엔 관심 없어.
내스티 │설령 모든 흐름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해도, 라인 랩은 반드시 이 프로젝트의 최초 제안자여야만 해. 가능한 한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크리스틴이 남긴 것도 최대한 지켜낼 수 있으니까.
내스티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는 아닐 거야.
사리아 │그래, 알았다. 수고해라.
내스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크리스틴의 사무실로 옮기지 않고, 이 낡은 사무실 밖에 '컴포넌트 총괄과'라는 명패만 달아놓은 거야?
사리아 │여기 있는 게 익숙해져서.
사리아 │뮤엘시스도 같은 질문을 했다. 눈시울이 빨개서 내 팔을 붙잡고, 크리스틴이 그리워서 그런 거냐고, 라인 랩에 항상 크리스틴의 자리를 남겨두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내스티 │아무래도 그냥 쓰던 사무실이 더 편한 거네. 여기 있는 자잘한 부분까지 다 네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내스티 │예전에 내가 네 사무실을 인테리어 해줄 떄도 그랬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내 뒤에 딱 붙어서 지켜보길래, 네 강박증이 파르비스보다 더 심한 줄 알았어.
사리아 │……
사리아 │내스티, 라인 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스티 │흠, 그래도 있긴 하지. 적어도 지금은 직원들이 총괄을 찾으러 올 때마다 헛걸음하는 일은 없으니.
사리아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내스티 │그래서, 이번 출장에 나를 선택한 이유가 그거야?
내스티 │여기를 잘라. 그래, 그 각도. 그래야 핵심 줄기랑 잎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아.
내스티 │테스트 합격. 스카이, 본격적으로 설치하기 전에 먼저 위치 좀 잡아줘.
내스티 │다음 그룹. 감광 센서 기능 정상, 부유 자세 안정, 에너지 입출력도 문제없어. 이것도 위치 잡아줘야 돼.
내스티 │아, 공구함 안에 있는 분리 세트가 필요하니, 나중에 같이 가져다줘.

스카이? │그럼 전에 쓰던 전동 드라이버랑 다기능 스패너는요? 그것도 필요한가요?
내스티 │상황 봐서…… 음?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상냥한 여자 │저도 정말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지금 제 단추에 가위가 걸려 있고, 양손은 나무를…… 다섯 그루나 잡고 있어서요, 이젠 진짜 손이 없어요.
내스티 │미안. 내가 할게. 스카이는 어디 갔어?
상냥한 여자 │부유층의 엔지니어링 점검을 나간다고 세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주임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셨어요.
내스티 │그때 말해 줄 수도 있었잖아.
상냥한 여자 │비서 수칙 하나. 조용히 웃으면서 상사의 지시만 받는다. 대화 내용이 기밀 사항에 해당하면 자동으로 귀를 닫는다.
상냥한 여자 │걱정 마세요. 아까 말씀하신 수치랑 전문 용어는 하나도 못 들었어요. 설령 들었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요.
내스티 │기억났다. 넌 행정부 사람이었지, 고든의 비서잖아.
상냥한 여자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내스티 주임님.
머시아 │저는 머시아라고 합니다. 그냥 머시라고 부르셔도 돼요. 고든 장관님을 대신해 점심 식사에 초대하러 왔습니다.
내스티 │고든의 업무용 메일은 네가 관리하는 거지?
머시아 │주임님께서 앞서 회신하신 거절 메일 16통은 장관님도 전부 확인하셨어요.
내스티 │그럼 본론만 말할게, 고든이 기초 공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나도 알아. 고든도 내가 일 이외의 '제안'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머시아 │음……
내스티 │아, 점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머시아 │혹시 마음이 바뀌신 건가요?
내스티 │확실히 점심을 먹을 시간이긴 해.
내스티는 공구함을 한참 뒤적이더니, 수십 가지 진단 장비와 가지런히 정리된 부품 봉투들 밑에서 은박지로 단단히 감싼 정육면체를 꺼냈다.
머시아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다. 눈앞의 이 종잡을 수 없는 라인 랩 주임이 도대체 어떤 음식 때문에 공중 레스토랑의 최고급 식사와 서비스를 거절한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스티가 무표정으로 포장을 벗긴 순간, 프로페셔널한 비서 머시아의 완벽한 미소에는 살짝 금이 갔다.

머시아 │말씀하신 점심이…… 그 벽돌인가요?
내스티 │(뭉개진 발음으로) 건빵이야.
머시아 │건빵이요?
머시아는 그 '벽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스티 │너도 배고프지? 먹어볼래?

머시아 │아, 네, 감사합니다……

머시아 │(힘겹게 씹는다)
머시아 │(겨우 삼킨다)
머시아 │콜록, 콜록!
내스티 │……
내스티 │거절해도 돼.
머시아 │비서 수칙 둘. 어떤 행동이 협력 관계에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상사의 손님이 하는 요청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내스티 │수칙이 몇 개나 있어?
머시아 │고든 장관님께서 2cm 두께의 수첩을 주셨어요.
머시아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릴게요. 제가 가장 먼저 외운 수칙이자, 가장 중요한 수칙인데요……
머시아 │어떤 난관을 마주하더라도, 상사의 지시는 무조건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 변명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스티 │……
내스티 │먹기 힘들면 굳이 먹지 않아도 돼.
머시아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제 말은 대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었어요.
내스티 │사실 나도 수칙이 하나 있어. 아주 단순한 거지만.
머시아 │무엇인가요?
내스티 │나는 카즈델 출신이야. 거기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바로, 음식은 소중하기 때문에 음식 앞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
내스티 │머시아, 지금 내 점심을 들고 있는 김에 솔직하게 말해 줘.
내스티 │고든이 대체 나랑 무슨 '협상'을 하겠다는 거지?
ˇ
테스터 A │보고하겠습니다! 저희 프로젝트의 핵심 컨셉은, '사람은 돌아도 술은 돌지 않는다'입니다. 원심력으로 중력을 대체해 무중력 우주 순항 체험과 시음 체험의 완벽한 융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테스터 A │'럭키 치스트비스트' 부유 회전바! 당신에게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도는 체험……!!!
스카이 │그만. 광고 문구는 됐고, 우리는 공학적 관점에서의 개선에 대해 평가와 질문만 할 겁니다.
스카이 │다른 테스터는? 전시품을 개선한 뒤 새로운 피드백은 없나요?
테스터 B │웩……
???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요! 스카이 씨, 저희 재검사 통과했죠? 입주 자격 취소 안 되는 거죠?
스카이 │애스펜 대표님, 공학 보고서 평가와 테스터 피드백 결과, 럭키 치스티비스트의 이 부유 회전바는 불합격이에요.
애스펜 │에너지 공급 불안정 같은 기술적 문제는 저희도 개선하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해서……
스카이 │이 파크의 규정대로 사흘 드렸잖아요.
애스펜 │하지만, 연구진이 해결책을 논의하는 데만 최소 닷새는 걸린다니까요!
스카이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의 기업 변동 수량은 트리마운츠 중심 광장의 교차로만큼 많아요. 운전기사들이 각자 처리할 일로 바쁘다고 해서 신호등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하진 않잖아요?
애스펜 │그럼 다른 방법은…… 참! 저희가 고용한 테스터가 거의 100여 명이 되는데, 몽땅 해고하면 그 돈으로 연구원을 더 뽑을 수 있을 거예요!
테스터 A │아니, 대표님, 어제 저희한테는 분명……
애스펜 │입 다물어!
스카이 │애스펜 대표님, 제가 '럭키 치스티비스트'의 등록 자료를 확인해 봤는데요.
스카이 │원래는 어느 작은 마을의 잡화점 주인이었더군요. 은행이 하늘 사업 대출에 대한 심사 기준을 완화하긴 했지만, 현재 대표님의 전문성으로는 사업을 부유 기술 연구로 전환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스카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테라 최초의, 그리고 단 하나뿐인 부유 섹터예요.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위상에 걸맞아야 합니다.
애스펜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 보고서만은 찢지 말아 주세요. 가진 돈을 몽땅 '럭키 치스티비스트'에 투자했단 말입니다. 제발요……
ˇ
테스터 A │그래서, 그렇게 끝났어?
테스터 A │이틀 뒤면 또 트리마운츠의 빌딩 유리창이나 닦는 신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테스터 B │웩……
테스터 A │마음껏 토해, 우리도 잠깐이나마 하늘 생활을 체험했잖아. 다시 개척지로 돌아가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치 않은데…… 그땐 토하고 싶어도 토할 게 없을 거야.
스카이 │……
ˇ
내스티 │전시회 개막 전 엔지니어링 점검을 포기하라고? 말도 안 돼.
머시아 │고든 장관님께서는 지금 사이언스 파크의 모든 연구 인력이 마무리 작업에 분초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점검 때문에 프로젝트를 중단한다면 전시회 개막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머시아 │그리고 주임님도 각 기업들과의 반복된 소통을 줄이면, 라인 랩의 연구에 더 전념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장관님은 늘 당신을 배려하고 계세요.
내스티 │배려?
내스티 │컬럼비아에 막 왔을 때, 난 황무지에서 수 년을 떠돌았어. 개척대를 위해 집도 지었고, 수송대를 대신해 강도도 물리쳤어. 일이 손에 익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버티기 너무 힘들었지.
내스티 │만약 그때 고든 같은 마음씨 착한 인간이 내가 잘 못하는 일을 전부 처리해 줬다면……
머시아 │그건 분명 행운이었겠네요.
내스티 │아니, 난 분명 황무지에서 죽었을 거야.
머시아 │……
내스티 │게다가, 우리한테 엔지니어링 점검을 포기하라는 건 고든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야.
머시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
내스티 │네가 고든이 협상할 때 쓰는 말투를 너무 똑같이 흉내 내서, 말속에 숨은 함정이랑 허점까지 다 드러났어.
내스티 │나는 카우투스가 아니야. 구멍에 들어가는 건 질색이지.
내스티 │말해 봐, 고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머시아 │……장관님 말씀대로, 역시 똑똑하고 과감한 분이시네요.
머시아 │그렇다면 당신도 아시겠네요. 장관님께서 이 파크의 행정 관리를 장악하고 있긴 하지만, 진정으로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는 건 라인 랩입니다.
머시아 │장관님께서는 이런 중요한 시점에 실수가 나오는 걸 원치 않으세요.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각 프로젝트의 진척에 따라 이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리스트의 순서대로 점검해 주셨으면 합니다.
머시아 │그렇게만 해주시면, 프로젝트 권한의 소유권을 떠나서, 점검 절차가 각 프로젝트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충돌을 최대한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머시아 │주임님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건, 장관님의 부담도 줄어든다는 뜻이니까요.
내스티 │……
내스티 │고든이 이 리스트에 어떤 꼼수를 부렸는지는 관심 없어. 서로 한 발씩 양보해, 합의가 이뤄진 걸로 치자.
내스티 │리스트를 줘.
머시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스티 주임님. 이제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요.
내스티 │마지막 질문. 아까의 대화에서 너는 또 어떤 수칙을 따른 거야?
머시아 │비서 수칙 열둘. 상사를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협상할 때는 상사가 한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반복한다. 밖에서는 비서가 곧 상사의 절대적인 대변인이니까.
머시아 │하지만, 내스티 주임님은……
내스티 │뭐?
머시아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고든 장관님은 라인 랩의 엔지니어링과 주임이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인지, 몇 번이고 강조하셨어요.
머시아 │오늘 혹여라도 주임님 사무실 앞에서 밤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방에 담요까지 챙겨왔거든요.
머시아 │그런데 당신은 장관님이 말씀하셨던 거랑 다릅니다. 비록 주임님은 타인의 배려를 원하지 않지만, 날카롭게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머시아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마음 편히 여유로운 점심을 즐길 시간이 생겼네요.
머시아 │감사합니다.
내스티 │……
작전 후
당황한 소녀 │오빠…… 앤드류 오빠! 또 그 사람들한테 맞았어?
스카이 │스카이라고 불러.
당황한 소녀 │하지만 그건 오빠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잖아. 아빠랑 엄마는……
스카이 │그 인간들 얘기는 꺼내지도 마! 한심한 주제에 우리한테 화풀이하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무슨 자격으로 내 이름을 정해?
스카이 │내가 트리마운츠 공대에서 6년 동안이나 바닥을 닦으면서 학부과정 수업을 몰래 엿들은 건, 미래에 그 인간들처럼 어리석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야!
당황한 소녀 │하지만……
스카이 │너도 마찬가지야! 맨날 내 가방에 잔소리 메모나 붙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밥 정도는 내가 알아서……
당황한 소녀 │또 온 거 같아……
스카이 │빌어먹을…… 끝이 없네 진짜, 얼른 내 뒤에 숨어.
건달 A │흰 가운 하나 걸쳤다고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줄 아나 봐? 네놈이랑 그 계집은 대통령 옷을 입어도 빈민가에서 온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스카이 │하아…… 시궁창에서 사는 무스비스트답네, 평생 위대함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겠지.
건달 B │뭐?! 너 뭐라고 지껄였어!
당황한 소녀 │오빠!

건달 A │뭐, 뭐야 저건?!
건달 B │재앙인가?! 빨리 도망쳐!
스카이 │멍청한 놈들, '재앙'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건 탐구다! 진보라는 거라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청년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지저분한 뒷골목에 있다는 것도, 뒤에 당황하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위대한 빛줄기를 향해 쫓아갔다.

??? │총괄은 걱정되지 않나요?
??? │언제 우리가 총괄을 걱정할 필요가 있었나?
??? │우리는 동행자야. 그저 동행자일 뿐.
??? │우리는 우리 일만 잘하면 돼. 그리고…… 행운을 빌어주는 거지.
??? │(살카즈어) 언젠가 카즈델도 하늘에 올라간다면, 화로에 네 이름을 새겨 줄게.
스카이 │하아…… 하아……
스카이 │저기요, 시, 실례합니다……
스카이 │저 사람, 하늘 위에 있는 저 위대한 사람……
스카이 │이름이 뭔가요?
내스티 │크리스틴.
내스티 │크리스틴 라이트.
ˇ
스카이 │내스티 주임님, 럭키 치스티비스트 외식업은 내일부로 입주 자격이 말소될 겁니다.
내스티 │재검사는 통과 못 했어?
스카이 │기준치보다 많이 부족해요. 이 파크에 제일 먼저 입주한 업종 전환 기업 중 하나인데, 그때는 '하늘 열풍'에 편승해 심사 기준이 느슨해서……
내스티 │그럼 거기 테스터들은, 어떻게 돼?
스카이 │거기 대표는 모터 종류도 구분할 줄 몰라요. 그냥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란 이름만 팔아서 한몫 잡으려던 거겠죠……
스카이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내스티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이 파크의 이름이 꽤 마음에 드나 봐.
스카이 │저는 여기를 그냥 '스텔라리아'로 불렀으면 좋겠어요.
내스티 │스카이, 네가 고리형 실험실의 기술 유산 공개를 반대한다는 건 알아.
스카이 │제가 '총괄 대행'의 결정을 지적할 생각은 없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결정은 우리가 받아야 할 존중을 잃게 할 뿐이에요.
스카이 │아주 적은 데이터 지원만으로도 수많은 과학기술 기업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되었지만, 수천만 컬럼비아 국민들을 비추던 그 고리형 실험실은 5살 어린아이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지능 개발 장난감으로 전락했다고요……
스카이 │지금 모든 컬럼비아인이 '스페이스'니 '우주'니 떠들어대지만, 정작 이 새로운 어휘가 크리스틴이 공개한 실험 일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스카이 │진정한 의미에서 크리스틴을 추모하는 인간은 이제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심지어, 내스티 주임님조차도.
내스티 │기록하고 돌아보는 건 역사학자의 일이야. 우리는 검증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질적이고 유효한 방향만 따르는 것뿐이지.
스카이 │그래서, 그 데이터와 방향이 지금 어떻게 됐는데요?
스카이 │지난 2년 동안, 라인 랩은 10여 개의 소형 실험실을 인수했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유독 크리스틴의 유산만은 보류된 채로 남아 있어요.
스카이 │이번 전시회에서 우리는 라인 랩의 스텔라리아 후속 연구 성과를 최초로 공개해, 삼류 과학기술 기업들을 탄복하게 만들고, 하늘 탐색이라는 영역으로 돌아와 다시 대중들의 시야에 들어가야 합니다.
스카이 │생태원이 고리형 실험실에서 전송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식물로 에너지를 전달하고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공학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스카이 │모종 재배, 플랜터 유닛 설치, 엔지니어링 점검은 모두 우리의 연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이죠…… 하지만 프리뷰에서조차 얼굴을 비추지 못하는 '식물원' 하나로 정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내스티 │……
스카이 │제발 알려주세요, 주임님. 그날 밤이 오기 전, 아무도 크리스틴이 천막을 뚫으려 했다는 걸 몰랐듯이, 라인 랩에도 더 큰 목표가 있는 거죠? 그렇죠?
내스티 │트리마운츠의 그날 밤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야.
스카이 │……
내스티 │다음 기업 점검이나 준비해. 순서가 조금 바뀌었으니까 유의하고.
스카이 │네.
내스티 │스카이.
스카이 │……
내스티 │네 심정은 이해해. 네가 크리스틴에게 고무되어 라인 랩에 들어온 것도 알고 있고.
내스티 │그날 밤,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가 그 빛을 좇은 건 아니었어.
내스티 │네가 첫걸음을 내디딘 이유를 잊지 마.
스카이 │……점검 자료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주임님.
내스티 │……
ˇ
스태프 │……여기 보안 카드, 계약서, 파크 내의 단말번호부입니다.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에 합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스태프 │다음 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애스펜 │입주 자격을 말소하려고요……
스태프 │대표하시는 기업명이 어떻게 되시죠?
애스펜 │럭키 치스티비스트 외식업이요.
스태프 │계약 해지 대상으로 테스터 총 82명 맞으신가요?
애스펜 │네, 그 사람들 자료와 제 자료 모두 여기 있습니다.
스태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애스펜 │……
애스펜 │하아…… 내가 그림자 달에 머리라도 맞았나? 전시회만 참가하면 무조건 본전은 뽑는다 믿고, 경험도 없는 생초짜 82명을 데려다 머릿수를 채우다니……
애스펜 │그런데 여기 있는 기업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그런데 왜 하필 내 '럭키 치스티비스트'만 탈락인데?
애스펜 │문제 대처가 조금 느렸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투자한 수백만 수표가 이렇게 증발한다고? 웃기지 마!
애스펜 │빌어먹을, 외발 부츠 그림자 달 부동산은 대체 어떻게 '3D 부유 고정 기둥'인지 뭔지 하는 그 기술 문제를 해결한 거지? 구두장이 따위가 뭘 안다고?
스태프 │애스펜 씨, 절차는 모두 끝났습니다. 오늘까지 파크 내의 핫라인은 아직 유효합니다.
애스펜 │네……
스태프 │하지만 만약 외발 부츠 그림자 달 부동산처럼, '특별' 요구 사항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기꺼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애스펜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미소를 띤 스태프가 단지 내 거의 모두가 갖고 있는 단말번호부를 꺼내고는 애스펜을 향해 번호 하나를 가리켰다.
수만 개의 번호 속에 숨겨 있는 이 주소도 이름도 없는 단말번호는, 마치 애스펜에게 남겨진 작은 희망과도 같았다.
애스펜 │이 번호로 연락하면 제 문제가 해결됩니까? '럭키 치스티비스트'가 이 파크에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스태프 │네, 그렇습니다.
애스펜 │그렇다면 고용 해지를 철회하겠습니다. 그리고 입주 자격 말소 신청도……
스태프 │걱정하지 마세요. '럭키 치스티비스트'의 입주 자격은 아직 말소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테스터들의 계약 해지는 철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태프 │이 핫라인이 선생님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겁니다. 그 테스터들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애스펜 │기적인가, 아니면 사기인가……?
애스펜 │상관없어. 여기 남을 수 있다면, 밑져 봐야 본전이잖아.
*전화음 소리*
ˇ
머시아 │고든 장관님.
고든 │음, 내가 한번 맞혀볼까? 내스티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리스트를 받았고, 내 제안도 수락했어. 맞지?
머시아 │맞습니다. 오늘 엔지니어링부의 점검 스케줄을 확인해 봤는데, 장관님이 주신 대로였습니다.
머시아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고든 │내스티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보내고 있어. 뭘 해도 다 내 뜻대로 풀린다니까!
머시아 │정말 즐거워 보이십니다.
고든 │라인 랩의 주임 따위가 내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나.
고든 │책상 위에 있는 편지, 한번 읽어봐.
머시아 │"주류, 담배, 아츠 유닛 및 오리지늄 제품 관리국에서 고든 타넨 장관님께 축전을 보내드립니다.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의 총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머시아 │두 장짜리네요? 이렇게 긴 축전은 처음 봅니다.
고든 │반년 전, 내가 컬럼비아 국경에서 받은 인사발령 편지에는 고작 두 줄 뿐이었는데 말이야.
고든 │다들 관리국 직책을 꿀보직으로 여겼지만, 그 7년 동안 나는 사미의 야만인이나 사르곤 정글의 토착민들에게서 단 한 푼의 '이득'도 못 챙겼어.
고든 │그때는 그 늙은 여우도, 관리국의 다른 직원들도 죄다 나를 곱게 보지 않았지. 하지만 결국엔? 늙은 여우는 은퇴했고, 나는 승진했어.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야.
고든 │아직 대낮이긴 하지만, 이렇게 기쁜 날에는 당연히……
머시아 │축배를 들어야죠.
머시아 │장관님, 샴페인입니다.
고든 │머시, 아주 잘했어. 내스티 일도 그렇고, 이 샴페인도 그렇고, 너도 내 옆에서 제법 성장한 셈이니, 너도 한잔해.
머시아 │정말 감사합니다만, 비서 수칙상 근무 시간에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든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그 수첩은 애초에 내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건데.
머시아 │그럼…… 축배사 한마디 해주시겠습니까?
고든 │음…… 6일 뒤의 전시회는 그저 시작에 불과해. 내 개막 연설은 필시 컬럼비아 전역을 뒤흔들 거야.
고든 │모든 로켓에 내 얼굴이 새겨지고, 그림자 달 아래의 도시에서 가장 큰 거리가 내 이름으로 명명될 거야.
고든 │라인 랩, 관리국, 특별구 정부…… 이제 그 누구도 내 머리 위에 올라갈 수는 없어. 사고만 안 터지면, 여기는 영원히 이 고든 타넨의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라고!
고든 │건배!
고든 │누구야? 내 파티를 축하해 주려 온 거냐?
낯선 남자 │안녕하세요, 혹시 사이언스 파크의 총장 맞습니까?
낯선 남자 │저는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에서 특별 초빙한 해설원, 오클리라고 합니다. 고든 장관님께 도착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고든 │……
머시아 │……
고든 │푸웁!!!
고든의 입에 머금었던 샴페인이 모조리 뿜어져 나왔다.
UR-TR-1 고공 증후군
한 병의 탄산수, 한 권의 홍보 책자, 그리고 날개를 달지 못해 안달 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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