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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knights-Event/[S]허락받지 못한 땅

[허락받지 못한 땅] UR-ST-2 시범 비행일

씨앗, 격동의 삶에서 온 씨앗, 하늘 끝까지 가지를 뻗는다.

 

 

펀 │수송구는 아직이야? 지도대로라면, 이제 건축 자재 보안 게이트가 보여야 하는데……

오클리 │아, 아직도 더 가야 해? 그런데 여긴 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네……

고든 │당연한 소리! 우리 외에 제4의 인물이 나타나면 바로 들키잖아. 정신 바짝 차려!

오클리 │히익!

오클리 │이 빠, 빨간색 액체는…… 천장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어. 내 얼굴에 떨어졌어!

고든 │이건 파이프에서 나온 녹물이야…… 그 입 꿰매버리기 전에 제발 좀 닥쳐.

펀 │어, 총장, 아까 제4의 인물이 나타나면 우리가 들킨 거라고 했지……?

 

펀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쏠렸고, 현장의 모든 사람은 '제4의 인물'을 똑똑히 보았다.

어두컴컴한 통로 끝에서, 어떤 흐릿한 형체가 깜빡이는 조명 아래 마치 귀신처럼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펀 │음, 어디서 본 얼굴인데?

오클리 │세, 세상에……

고든 │계속 가. 나는 라인 랩 실험 구역에 대한 통제와 조사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고 있으니, 저게 누구든 상관없……

??? │그런가?

고든 │……

 

내스티? │고든 장관, 이 상황을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고든 │내스티, 라인 랩 실험 구역은 현재 조사 중이고, 너도 우리의 행정요원과 경비의 조사에 협조하기로 동의했잖아.

내스티? │당사자 몰래 하는 조사를 어떻게 협조하라는 거지?

내스티? │게다가, 이 해설원도 '행정요원'에 포함되나? 처음 알았네.

고든 │그 실험 사고 전후로 이 해설원은 라인 랩에 방문했지. 증거 수집하러 데려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고든 │그리고 사전 고지가 없었던 건,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내게는 이런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어……

 

출발 전, 고든은 모든 위험 요소를 고려했고, 심지어 구스타브에게 추궁당하는 상황까지 대비해 두었다.

그는 머시아를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상황을 통제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등 뒤의 굵은 꼬리는 마치 통제할 수 없는 위협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저절로 바닥을 탁탁 내리치고 있었다.

눈앞의 내스티는 무슨 꿍꿍이라도 떠올린 듯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불길함과 불안함에 고든은 저도 모르게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둔 왼손을 꽉 움켜쥐었다.

 

내스티? │……

내스티? │(하아, 나는 그저 물 분신을 화분에 숨겨놓고 내스티 대신 감시카메라 역할만 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 파크의 장관이 이렇게 까다로운 상대라는 건 몰랐다고!)

내스티? │(이대로 밤새 실랑이를 벌이면…… 생각만 해도 피곤해! 그냥 내 방식대로 해야겠다.)

내스티? │크흠!

 

통로에 들어선 순간부터 귓가에 맴돌던 물방울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투명한 물방울은 마치 물리 법칙을 벗어난 듯 허공에 멈춰 있었다.

차가운 감촉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졌고, 고든 일행은 그제야 물이 어느새 발등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펀 │자, 장관, 위를 봐! 저…… 저게 정말 내스티 주임 맞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고든은 믿을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물줄기가 '내스티'의 몸으로 흘러들어 내스티를 휘감았고, 떠오르게 했다. 그녀는 세 침입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든은 그 어떤 아츠 유닛에서도 이런 효과를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이것이 밴시 고유의 주술이라면 경계해야 마땅했지만, 그보다 고든을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순간, '내스티'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름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내스티? │역시 이 대지에 일어나는 일은 전혀 변함이 없네, 장관. 그런 진부한 변명은 다른 곳에서 만 번은 넘게 들었거든.

내스티? │그것보다, 이 상자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려주지 않을래? 설마 라인 랩에 줄 선물이야? 크리스마스라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고든 │너…… 너는 대체 누구냐!

내스티? │나? 당연히 몇 시간 전에 너희들 때문에 생태원의 연구 성과가 다 망가진 엔지니어링과 주임, 내스티지~

고든 │내스티가 이렇게…… 발랄하게 말할 리 없어. 그리고 왜 계속 경례하고 있는 거지? 설마 아츠를 시전하기 위한 제스처인가?

내스티? │어머, 들켜버렸네.

고든 │훗, 나를 속일 순 없지. 네 오리지늄 아츠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라인 랩의 지하 통로야. 모든 불미스러운 일은 전부 너희가 감당해야 해.

고든 │전시회 실험 성과를 잃은 것도 모자라, 직원들과 함께 감옥에 가고 싶나?

내스티? │장관,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내스티? │네 말대로, 여기는 라인 랩의 지하 통로야. 게다가 이미 너의 명령으로 봉쇄된 상태고.

내스티? │장담하는데, 오늘 밤의 이 '조사'를 너는 분명 부하들에게 공유하지 않았을 거야.

내스티? │만약 네가 여기서 죽는다면, 그 사실을 알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든 │이 자식!

고든 │쳇, 일단 도망가!

 

 

ˇ

내스티 │……

 

내스티는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의 밤거리를 멍하니 걷고 있었다.

이 사이언스 파크는 라인 랩의 기획서에서 시작되었고, 그 핵심 구조는 내스티가 직접 설계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장식한 온갓 기상천외한 발명품을 내스티는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길가에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에어 가로등을 켜는 방식조차 잠시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내스티는 문득 자신이 늘 낯선 삶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스티 │꼭 라인 랩에 처음 왔을 때 같네.

내스티 │뮤엘시스가 세면대에서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놀리면서, 무균 실험실 청소 방법을 가르쳐줬지.

 

내스티는 걸음을 멈췄다. 또다시 벽돌 사이에 놓여 있는 광택 없는 파편 한 조각을 발견했다. 그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끈 골필의 일부가 틀림없었다.

그녀는 골필의 파편을 집어 들었다. 전에도 그녀는 이렇게 무언가를 주워들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새 삶을 처음 시작했을 때였다.

 

어린 내스티는 협곡의 숲을 헤집고 다니며, 자신보다 훨씬 큰 자루를 끌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주워 차곡차곡 그 안에 넣었다.

그러나 베일라는 늘 바빴다. 협곡에 돌아온 보름 동안, 젊은 밴시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찾아와 온갖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다.

밴시들이 모두 잠들고, 협곡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된 후에야 베일라에게는 내스티의 손을 잡고, 그 아름다운 곳을 함께 산책할 여유가 생겼다……

결국 어린 내스티는 직접 오두막을 짓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한 자루 가득 모은 나뭇가지가 너무 무거워서 베일라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밴시 A │친애하는 베일라 님, 우기가 지난 지도 꽤 됐는데, 우리 협곡에서도 조정 경기를 다시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쯤이면……

베일라 │안개 호수 동쪽의 진흙을 다 치울 때까지 기다려야 해.

베일라 │하지만 이번에는 배에 '회전' 주문을 걸면 안 돼, 알겠니?

젊은 밴시 B │베일라 선생님! 무심과의 덩굴이 저의 집을 뚫고 들어왔는데, 잘라버려도 되나요?

베일라 │안 돼. 무심과의 열매만큼 깃뿔을 닦기 좋은 건 없거든…… 그 덩굴이 다른 방향으로 자라도록 '유도'해 보는 건 어떠니?

베일라 │잘 됐네, 전에 가르쳐준 주문을 얼마나 연습했는지 한번 보자.

은 밴시 C │베일라 집사장님, 저희가 외부에서 온 '증표'를 못 받은 지 얼마나 됐죠?

베일라 │이번 달에는 대여섯 개 정도만 왔어. 토석의 아이에게 횃대나무의 치료를 부탁하려고 카즈델에 가면서 겸사겸사 처분했지.

젊은 밴시 C │그렇게 적어요?

베일라 │좋은 일 아니니?

젊은 밴시 C │저한테 엘레지를 가르쳐주신 게 벌써 반년 전이에요…… 아직 누군가를 위해 진짜로 불러본 적도 없고요. 다음엔 제가 가서 동족을 위해……

라케라말린 │자자, 여기까지. 베일라도 좀 쉬어야지.

베일라 │괜찮아,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라케라말린 │아이들이 그대를 '선생님, '집사장'이라 부르는 걸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부여한 직함이 아니다.

라케라말린 │지난 200년 동안, 그대가 협곡을 위해 해온 모든 것을 생각하면, 이 '밴시의 주인'이라는 내 칭호가 무색해지더군.

베일라 │너도 알다시피, 뭐라도 더 해야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니까.

베일라 │오히려 너, 너야말로 이번에 전하를 알현하면서 또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나? 우리가 협곡에 은거한 뒤로, 두카렐은 밴시를 곱게 본 적이 없다.

라케라말린 │그 녀석은 원래 아무도 곱게 보지 않는다. 다만, 전하께서……

라케라말린 │전하께서 오리지늄의 본질을 연구한 작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전하께서 또 다른, 더 결연한 길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베일라 │……그럼 우리는? 협곡은?

라케라말린 │설령 전하의 생각이 바뀌었다 해도, 협곡은 더 이상 살카즈의 미래와 무관하다.

라케라말린 │협곡은 여전히 밴시의 피난처다.

라케라말린 │며칠 전, 그대가 한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던가?

베일라 │떠돌던 동족이 남긴 아이야…… 5년 전에 찾아냈어야 했는데.

라케라말린 │요 며칠, 아이파닐이 언제쯤 새로 온 누나를 만날 수 있냐고 자꾸 보채더군…… 그 아이는 협곡 밖의 일이라면 아직도 호기심이 많아.

베일라 │그 아이도 참……

베일라 │아이파닐에게 전해줘. 내스티는 이제 막 협곡에 와서 아직 겁도 많고, 적응 중이라고……

 

ˇ

내스티 │거짓말, 나는 아주 용감해. 알잖아.

베일라 │그래. 다만, 너는 앞으로 다른 밴시들과 아주 오래 함께 지내야 한단다.

베일라 │그들은 네게 돌을 던지지 않아, 아마 열매를 나눠주겠지. 그들과 지내는 건, 네가 예전에 카즈델에서 동족들과 지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를 거야.

베일라 │그래서 너희들의 만남은 좀 더 정중했으면 좋겠어. 내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니?

내스티 │알았어.

내스티 │그런데 베일라, 뭘 또 준비해? 아까 말한 그 '외부에서 온 증표'랑 관련이 있어?

내스티 │혹시 방에 잔뜩 쌓여 있는 거 말하는 거야? 시커먼 핏빛 결정, 더러운 수의, 말라비틀어진 심장?

내스티 │그런데 왜 대여섯 개뿐이라고 한 거야?

내스티 │밤마다 늦게까지 그것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잖아. 볼 때마다 표정도 안 좋고, 미간도 잔뜩 찌푸리면서……

베일라 │……내스티.

베일라 │이 협곡이 마음에 드니?

내스티 │당연하지.

내스티 │여긴 진흙에 피가 있지도 않고, 집 안에 검은 돌도 없어. 싸울 필요도 없고, 먹을 것도 충분하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어……

베일라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니?

내스티 │응. 그래서 빨리 내 오두막을 지으려고.

베일라 │어디에 지을 생각이니? 벌써 위치를 골랐어?

내스티 │협곡 안쪽에 아주 크고 예쁜 나무가 있지? 다들…… '횃대나무'라고 부르던데?

베일라 │맞아, 그곳은 밴시의 마지막 귀착지야.

내스티 │다들 그쪽에 살고 있지? 아직 날 데려가 준 적은 없지만……

내스티 │나도 그 근처에 살고 싶어. 그래도 돼?

내스티 │그리고 언제쯤 주문을 가르쳐줄 거야? 그럼 이 한 자루 가득 담은 나뭇가지를 혼자서 옮길 수 있는데.

베일라 │조급해하지 말렴.

내스티 │그럼 골피리는 언제 가르쳐줄 거야? 그래야 다 같이 놀 때, 나도 피리 소리를 들려줄 수 있잖아.

 

내스티 │네 방에서 하나 가져왔는데,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안 나.

베일라 │내스티, 서두를 필요 없단다.

 

내스티는 문득 옆에 있는 초췌한 밴시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베일라가 어느 쪽 깃뿔부터 닦는지 알고 있었고, 비슷해서 구분하기 힘든 검은 드레스가 몇 벌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베일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내스티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그저 고집스레 골피리를 들고 화난 듯이 몇 번이고 불었지만, 바람이 새는 소리만 냈다.

이어서, 길고 그윽한 선율이 바람이 새는 소리를 덮었다.

 

베일라 │아이들이랑 같이 놀 때, 그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거구나?

베일라 │미소를 위한 반주라면, 골피리까진 필요 없어.

베일라 │자, 이리 오렴. 내가 가르쳐줄게.

 

그냥 나뭇잎일 뿐인데, 내스티는 그게 어떻게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더구나 왜 그 소리가 이토록 애절한지 알 수 없었다. 분명 하늘은 푸르렀고, 안개 호수에는 물결이 잔잔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내스티는 베일라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협곡의 깊은 곳에는 횃대나무의 가지가 아스라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멀리 있었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이 마치 갈대 같기도, 운명 같기도 했다.

 

 

ˇ

메이랜더 특수요원 │내스티가 라인 랩 실험 구역에 남아있고, 심지어 고든을 죽이려 한다고요?

메이랜더 특수요원 │머시아 씨, 제 뒤에 서 계세요.

머시아 │정말 밴시와 싸우게 된다면, 저는 고든 장관보다 더 빨리 도망칠 수 있어요.

머시아 │그런데 방금 그 '내스티'는 그냥 화분이었어요.

메이랜더 특수요원 │물 분신?

메이랜더 특수요원 │이곳에 뮤엘시스가?

머시아 │아마 물의 엘프가 아츠를 부여한 장치일 거예요. 실제로 뭘 하지는 못하죠.

머시아 │내스티가 사람들에게 준 인상, 뮤엘시스의 기발함, 거기에 라인 랩 구역의 적절한 활용…… 저 사람들이 놀라 도망친 것도 무리는 아니죠.

메이랜더 특수요원 │그럼 우리도 고든 장관을 따라 철수해야 합니까?

머시아 │아니요. 바닥에 남은 물 자국을 따라 더 들어가 보죠.

ˇ

메이랜더 특수요원 │머시아 씨, 시공 도면대로라면, 이 앞은 막다른 길입니다.

메이랜더 특수요원 │바닥에 남은 물 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뮤엘시스의 장치도 결국은 겁만 주는 용도가 아니었을까요?

머시아 │내스티 씨는 엔지니어링 분야의 천재예요. 도면에 '숨겨진 공간'을 넣는 건 일도 아니죠. 게다가 물 분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안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설명해요.

머시아 │실은,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라인 랩의 주임이 둘씩이나 참여한 프로젝트인데, 왜 남아서 경영하는 건 내스티 씨 혼자일까요?

메이랜더 특수요원 │이 생태원은 누가 봐도 뮤엘시스의 전문 분야긴 하죠. 안 그렇습니까?

머시아 │만약, 본질적으로 내스티가 완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말이 되겠죠.

메이랜더 특수요원 │머시아 씨, 그 말은……?

머시아 │만약, 당신네 집 화분이 갑자기 말라 죽었다면…… 미안해요, 그냥 가정일 뿐이에요…… 당신이라면 계속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나요?

메이랜더 특수요원 │아니요. 저는 죽은 시간보다 왜 죽었는지가 더 궁금할 겁니다.

머시아 │하지만 생태원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내스티 곁에 있던 몇몇 선임 연구원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시간을 확인하는 거였죠.

머시아 │마치 이 장대한 고사와 부패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머시아 │어쩌면 그 '사고'라는 것도, 단지 식물이 시드는 시점이 잘못됐다는 걸 의미하는 걸지도 몰라요.

메이랜더 특수요원 │그렇다는 건, 라인 랩이 신청한…… 스텔라리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공 환경에서의 장기 생존 식물 품종의 육성 프로젝트도……

머시아 │아마 위장이겠죠.

머시아 │아무래도 메이랜더가 라인 랩의 진짜 비밀에 닿은 것 같네요.

머시아 │라인 랩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생태원에서 식물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는 거였어요.

머시아 │엘프가 바라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밴시가 익히 아는 그 방식으로 죽는 것.

메이랜더 특수요원 │대체 왜죠?

머시아 │그 죽음으로……

머시아 │더 특별한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죠.

 

 

ˇ

내스티 │……

ˇ

베일라 │……

 

노쇠한 밴시는 거리 끝의 그림자 속에 서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 밤은 그녀가 살아온 300년이란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익숙한 모습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헤어질 때보다 훨씬 키가 자랐고, 몸집도 제법 단단해졌다……

많이 달라진 눈매…… 생소한 옷 스타일……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베일라는 갑자기 두통을 느꼈다. 혼란스러운 기억은 마치 한겨울의 안개 호수 같았고, 차갑고 무거운 안개는 순식간에 베일라를 집어삼켰다.

 

베일라 │내……

ˇ

내스티 │(살카즈어) 분리하라.

내스티 │(살카즈어) 인도하라.

 

내스티는 골필의 파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밴시들만 쓰는 언어를 읊조렸다.

주문은 내스티의 것이 아니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기운을 분리해 그 기운의 근원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골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곧 밝혀질 터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스티? │『내……티, 조심……』

내스티 │그쪽은 어떻게 돼가?

내스티? │『또 다른…… 사람이……』

내스티 │……

 

 

ˇ

고든 │후, 후…… 하아……

펀 │자, 장관…… 그, 그만 뛰어……

펀 │길을 잃은 것 같은데……

고든 │나도 알아. 라인 랩 실험 구역의 지하공간이 이렇게 넓다니, 이건 규정 위반이잖아……

고든 │보통, 과학연구를 하는 녀석들이 실험 구역에 이렇게 큰 공간을 숨겼다는 건…… 뭔가 거창한 계획이 있다거나, 그 거창한 계획이 엎어졌다는 뜻이지.

오클리 │자, 장관님, 혹시 발밑의 움직임이 안 느껴지세요……?

펀 │바닥이 갈라지고 있어……

고든 │……그렇다면 전자의 경우겠군.

오클리 │누, 누가 도와줘……

펀 │쓰읍…… 우리가 들어온 문은 또 언제 닫힌 거지?

고든 │내스티, 설마 그 빌어먹을 거대 미사일은 아니겠지?

 

바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고든은 바닥이 두꺼운 콘크리트라기보다 오히려 바삭한 크래커라고 믿고 싶었다.

그는 기둥에 꼬리를 걸어보려 했고, 손으로 벽을 잡아보려 헀지만, 결국 손에 닿은 것은 희미하게 빛을 내뿜는…… 나뭇가지 한 토막이었다.

 

그의 발밑에서, 썩은 나무와 금속이 뒤섞여 이루어진 거대한 수관이 어둠으로부터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에 둘러싸인 거대한 나무가 소리 없이 밤하늘로 솟아올랐고, 그 광경은 흡사 별들이 거꾸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고든 │이건……

고든 │프로펠러가 있나? 추진기는?

고든 │아니, 아니야…… 엔진 소리도 안 들리는데 어떻게…… 날 수 있는 거지?

고든 │내스티, 라인 랩…… *컬럼비아 감탄사*!

고든 │젠장, 괜히 경비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가르쳤나? 오밤중에 뭔가가 하늘로 떠오르는데, 꼭 플래시로 비춰봐야 직성이 풀리나?

펀 │장관, 우리 이거…… 들킨 거 맞지?

고든 │지금 이 시간에 안 자고 있는 놈들까지 우리가 금지품 상자 2개를 껴안고 나무에 걸려있는 걸 봤어. 뭐, 들켰다고 봐야지.

고든 │지금 밑에다 대고 수사 중에 라인 랩의 위험한 실험물을 찾아냈다고 외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고든 │……아니, 안 돼. *컬럼비아 욕설*, 이게 어떻게 떠오른 건지 알아내기 전까지, 부숴버리게 둘 순 없잖아.

고든 │이번엔 정말 끝장이야.

 

ˇ

메이랜더 특수요원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머시아 │아무래도 우리 같은 외부인의 침입에 뭔가가 뜻밖에 활성화된 모양이네요……

머시아 │하지만 이제 이 파크에는 더 이상의 비밀은 없게 됐어요.

 

 

ˇ

스카이 │내스티 주임님, 이건 또 하나의 기적인가요, 아니면……

스카이 │기적의 요절인가요?

 

 

ˇ

내스티 │말 안 해도 돼. 여기서도 다 보이니까.

내스티 │……바로 돌아갈게.

ˇ

베일라 │내……

 

노쇠한 밴시는 머뭇거리다가 끝내 그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베일라는 저 멀리 달려가는 젊은 밴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의 끝에는 은은한 빛을 두른 거대한 나무가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무의 뿌리는 그다지 단단해 보이지 않았고, 밤하늘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멀리 있었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이 마치 갈대 같기도, 운명 같기도 했다.

 

베일라 │하늘에…… 횃대나무가……?